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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배우 Apr 25. 2019

기분 호신술

예상치 못하게 망쳐진 내 기분 지키기

 ‘아이씨 짜증 나!’

 나에게 쏟아낸 짜증도 아니었는데 스타벅스 2층에서 만났던 여고생의 혼잣말이 내 기분을 망쳐 놓았다.

 이해는 됐다. 5000원이 넘는 메뉴를 시키며 스타벅스에 온 이유가 있었을 텐데 좋은 자리는 이미 만석이고 테이블 사이가 가까운 자리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그나마도 4인 일행이 앉을 수 없는 2인 테이블 밖에 없었으니 어쩌면 그 아이에겐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이블을 둘러보다가 혼잣말을 내뱉었던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고 표정 한 가득 느껴지던 내장에서 올라온 듯한 짜증은 내 하루의 기분을 망쳐버리기 충분했다. 고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였는데 딱 그 나이의 사춘기 아이들처럼 절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뱃속부터 올라온 짜증이었다.

 나는 왜 그 아이의 감정 쓰레기를 받았던 것인가? 왜 아무 관계도 없는 그 아이의 대상도 없이 버린 감정의 쓰레기를 굳이 주워서 내가 쓰레기통이 된 것처럼 그 쓰레기를 나에게 담았던 걸까?




 다른 이야기가 있다. 아들을 유모차에 태워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어스름한 밤이었는데 매캐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담배였다. 그 공원은 공원 전체가 금연이었는데.... 게다가 참지 못하고 누구냐고 소리쳤더니 정신없는 고등학생이 들이었다.

 하.......


 금연공원에서 흡연을 하는데 거기에 고등학생이라니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왜 화가 났나?

 담배냄새를 맡는 것도 화가 났는데, 길도 아닌 금연공원에서, 그것도 고등학생이 숨어서도 아니고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나? 슬슬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담배 피우지 말라고 훈계하고 돌아서긴 했지만 내 기분이 망쳐서인지 뒷맛이 씁쓸했다.


 



 나는 왜 기분의 업다운이 내가 아닌 외부의 사건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가? 기분은 내 것인데.. 왜 내 기분이 내가 아닌 남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위 두 사건의 나의 합리적인 대응법이 생각이 난다. 첫 사건은 그저 힘든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생각해버리면 됐던 거고 두 번째는 그저 공원관리사무소에 신고해버리면 됐던 것인데 왜 나는 화가 나고 그날 저녁을 다 망쳐 버린 것인가? 이런 싸XX를 연발하며 저녁을 다 날려버리고 오붓했던 패밀리타임이 지나가고 나의 에너지 때문에 아내의 기분마저 망쳐버리는 어이없는 사건


 그 사건의 실마리를 어린 시절 형과의 싸움에서 찾았다. 2년 터울이라서 너무 많이 싸우면서 자랐다. 형과는 늘 치열하게 싸웠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형이 놀리고 화가 나서 내가 먼저 때리고 형에게 죽을 만큼 맞고.. 에휴~~

 매번 반복되는 패턴이 종료된 것은 중학교 3학년쯤이었다. 정말 사람 놀리는데 도가 텄던 형의 놀림에 나는 늘 5분만 지나도 화가 났었는데... 그 놀림을 받아넘기고 오히려 형을 놀릴 수 있는 수준의 언변을 얻어왔더니 주먹질하던 싸움이 이제는 제법 말싸움을 넘어갔고 어떤 날은 형이 먼저 주먹을 날리는 일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것!’

 박수도 오른손, 왼손이 있어야 소리가 나는데 만약 한 손이 사라진다면... 오른손이 막 박수를 치고 싶은데 왼손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럼 충돌이 사라지는 것이지!!

 물론 그런 외부의 충격! - 나의 화를 자극하는 트리거가 뭔지 알아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겠지만 - 으로부터 모든 것을 방어할 수 없겠지만 세상에 도발해 오는 그 도발을 도발이라고 인지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내 삶에 끓어오르는 화를 잠재울 수 있게 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중학교 3학년이 되고 형의 도발에 먼저 넘어가지 않게 된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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