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직업 - 배우

공감이 없는 배역을 연기하기 위한 공감

by 김배우

대본의 마지막장을 넘겼다. 보통은 새로운 구상이 머릿속을 뛰어다니기도 한다. 때로는 인물 간의 복잡한 감정선이 명확하게 보이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가슴이 뛴다. 어떻게 새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까 보다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인물을 만들어 낼까? 익숙한 장면에 어떻게 새로운 모습을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상상으로 가슴이 뛸 때가 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가슴이 갑갑해져 온다. 보통은 대본을 받으면 내리 3번은 연달아 읽곤 하는데...

도무지가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저 악역이라면 악역 속에서도 그가 왜 흑화 하였는지 이야기를 찾기 마련인데....

그의 행동은 그런 당위성조차 깡그리 무시해 버린다.


마치 최근에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위안부는 없었다' 외치는 그와 닮아있다.

자신의 아픔은 크게 보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반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여기는 사람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송곳이 되어 피해자의 심장을 찌르고 그것도 모자라 손톱 밑의 살을 긁어내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자신의 아픔은 커다랗게 느끼는 사람


과거 선배님께서 이러한 막가파식 악역에 대한 연기를 할 때는 최대한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줘 반면교사가 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실제로 무대 위에 그 모습을 보일 자신이 없다. 이게 정말로 가능한 종류의 행동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무대는 계속되기에 오늘도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 한다.

공감이 없는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참 아이러니한 직업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현실에서 누군가를 찌르는 송곳이라면

배우의 행동은 모순되게 그 송곳으로 반면교사를 삼아 누군가를 위로하는 날카로움이라는 것이다.

아니 그래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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