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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브 Nov 06. 2020

능력 밖의 일은 하지 마

Don't bite off more than you can chew

☼ 이 글은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 하기가 싫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을 섞어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작되었습니다. 가벼운 낙서와 함께 제가 남겨두고 싶은 소소한 이야기 혹은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에 대해 풀어냅니다. 그러니까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쓰는 글이지만 영어보다 한글이 더 많은 글입니다.



그러니까, 사회 초년생 때의 일이다. 보통 회사 집기나 잡일들은 막내들이 맡게 되는데 그 날은 컴퓨터가 고장이 났었다. 공대를 다닌 나는 조립은 하지 못하더라도 소프트웨어는 곧잘 다루는 편이었는데ㅡ물론 공대를 다녀도 컴퓨터와 담을 쌓고 사는 인물들이 많다ㅡ때문에 당시 동기나 선후배의 신상 혹은 중고 컴퓨터에 윈도우, 프로그램 등을 설치해주는 일이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됐다. 이런 이유로 컴퓨터 그게 뭐 별일인가 라는 생각이 있었고 당시 다른 팀의 과장님이 "요브야- 컴퓨터가 이상해, 좀 봐줄래?" 하는 일은 아주 심드렁하게 그러나 또 내가 활약할 차례인가 하는 자만심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미 지난주에 복사기도 척척 고쳤겠다. 컴퓨터의 오류쯤이야. 그런데 이게 웬 걸, 컴퓨터를 밀어버리려고 해도 밀리지도 않고 오류를 잡아내려고 구글링을 해도 도통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설정값들을 잡아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사무실 바닥에 주저앉아 컴퓨터를 다시 연결해가며 문제를 찾는데 1시간 반, 다른 컴퓨터로 일하고 있던 과장님이 물어왔다. "뭐가 잘 안되니?" 


아.. 아니요, 할 수 있습니다!

그땐 정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긴장도 많이 했었지만 맡겨진 문제는 풀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잡혀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러니까 그걸 알기만 하면 금방인데.. 이런 생각으로 3시간, 4시간.. 아, 될 것 같은데, 하는 마음에서 씨름한 시간이 쌓이니 들인 시간이 얼마인데 이제 와서 안된다고 할 순 없지 라는 집념으로 5시간, 심지어 퇴근시간 너머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었다. 그런 나의 덕으로 과장님 마저 야근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야, 안 되는 건 그냥 안된다고 해. 혼자 끌어안고 있지 말고.



지금 보면 뭐 저런 미련한 막내가 있나 싶다. 지금의 나였으면 저 녀석 꿀밤 하나 쥐어박고 싶단 생각을 얼굴로 말하고 있었을 거다. 그 사건으로부터 근 10년이 지났다. 지금의 나는 좀 내려놓을 것 내려놓고 사냐,라고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잘 모르는 건 납죽 엎드려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지만 애매한 경계에 서 있는 문제들은 여전히 이리저리 돌리고 저리 까보기를 반복하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의견을 물어본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나의 능력을 한계로 몰아서 넘어서는 것은 높은 성장력을 발휘하지만, 그때를 구분하는 판단력 역시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전문가에게 맡겨서 20분이면 될 일을 내가 6시간이나 붙잡고 있다면 그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는 것을, 그 후로도 몇 번 깨지면서 겨우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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