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 - 상황의 마땅함
아침 일찍 일어나 스케줄을 확인한다. 10시부터는 '삼경스쿨' 세미나가 있다. 그러면 배민은 9시부터 시작이니까 2~3개 정도의 콜은 뺄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빈 시각을 꽉꽉 채우는 걸 좋아한다.
남의 아침밥을 챙겨주기 전에, 일단 속 편한 누룽지로 내 아침을 채운다. 9시쯤이 되어 폰을 켜서 운행 시작을 누르니, 아침부터 신당동 떡볶이를 주문하신 분이 계신다. 시간이 없어, 이리 재고 저리 재며 까다롭게 콜을 고를 여유는 없다. 그렇게 신당동 떡볶이를 전달하고, 다음 사람에게 한솥도시락을 전달하니, 10시가 되기 20분 전이다. 가는데 10분 정도 걸리고, 또 내가 오늘 발제를 맡았기 때문에 지금 가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학당이 있는 필동으로 가려는데, 때마침 B마트 꿀콜이 떴다. 학당이 있는 필동 바로 옆 장충동으로 가는 주문 건이었다.
‘아... 이걸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잠시 멈춰 섰다. 이 6천 원짜리 꿀콜을 버리고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싶었다. 가는 길이니까, 들고 가도 시간이 얼마 안 걸릴 거라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꿀콜 중독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이 증상은 매우 심각해서 꿀콜을 보는 순간, 그동안 쌓여있던 피로가 눈 녹듯이 녹는 일이 일어난다. 예전에 밤 9시쯤,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야겠다는 50대 초 큰 형님을 새벽 1시까지 하게 만든 그 증상이다. 큰 형님은 “퇴근하려고 하는데, 자꾸 손가락이 누르는데 어떡하지?”라고 하시며 그렇게 마감까지 하고 가셨다. B마트 콜은 없는 기운도 솟아나게 하는 특 꿀콜이다.
나 스스로 손가락을 억제하는 중에 ‘상황의 적절함’을 뜻하는 의(義)라는 한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자 꿀콜에 빠질 뻔한 나에게, 다시 객관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입체적인 힘이 생기는 듯했다.
나는 오늘 10시에 세미나가 있고, 또한 발제자이기 때문에 늦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의(義)에 맞는 이런 객관적인 상황을 딱 세우고 그 콜을 다시 바라보니, 잡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맺어졌다.
공자의 가르침 중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객관적 예의범절을 따른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와도 같은 말이다. 나의 욕심을 누르고 약속된 시간을 지키는 발제자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