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이인 25장
찜질방에서 나온 아침의 마음 상태는 넉넉하고 드넓다. 발끝까지 완전 충전이 된 느낌이자, 무언가를 가득 채우고 나온 느낌이다. 어제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서 대강 구석에 세워놓은 오토바이로 풍성한 발걸음을 옮긴다. 오토바이에 올라 신당동 ‘이공김밥’으로 아침을 먹기 위해 넘어간다.
이 식당은 요즘 나의 글쓰기 공간이 되어주고 있는 ‘탑클래스 PC방’ 바로 근처에 있는 밥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테이블 3개 정도의 아담한 공간에, 큼직한 TV가 한쪽에 매달려 있다.
김밥은 2,000원부터, 떡만두국과 덮밥류는 5,000원, 찌개류와 돈까스류는 5,500원, 제일 비싼 건 6,000원이다. 가격이 저렴해서 큰 형님과 함께 요즘 1일 1이공김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들어와서 가격표를 보면 무료급식소에 온 느낌이 들어 행복해진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그저 흔한 저렴한 식당 중의 한 곳일 뿐이다.
이곳 아줌마들이 3명 정도인데, 피크 시간대에는 같이 일하고, 피크가 끝나면 시간을 나누어 일하신다. 어제저녁은 사장님 아줌마가 계셨지만, 오늘 아침은 다른 아줌마가 계신다. 두 테이블에는 이미 단골손님들이 와서 식사하고 계셨다. 들어가 앉아 메뉴를 고르는데, 마침 가스레인지 위에 오늘 팔 불고기를 끓이고 계셨다.
“아줌마, 불고기 덮밥 돼요?”
“어? 마침 그거 끓이고 있었는데! 아까 제육볶음 준비할 때는 다른 손님이 제육덮밥을 주문했었는데. 신기하네 ^^”
“그게 불고기인 거 같았어요.”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덮밥을 내오시며 말씀하신다.
“많이 드렸어요.”
‘음? 아침이라 많이 먹고 싶지 않은데...’라고 속으로 말한다. 요즘은 생각나는 대로 다 내뱉지는 않기 때문이다. 많이 주셨는데, 이걸 남길 수는 없으니 참 곤란한 상황을 만났다. 그렇게 음식을 앞에 두고 심호흡을 한다. 양을 보니, 갈 길이 멂이 느껴져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세 아주머니는 생김새와 나이는 서로 다르시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연말 기념으로 빨간색 비니모자를 쓰셨다는 것이다. 비니모자 한쪽에는 ‘LFC’라고 쓰여 있어, 처음 봤을 때 KFC 짝퉁인가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사장님 아줌마에게 굳이 쓸데없이 KFC짝퉁 같다는 말을 해버렸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안 그래도 그래서 LFC를 다시 재정의하셨다고 재치 있게 받아주셨다. '이(Lee)공 Factory Company'로.
나의 이런 급작스럽고 부정스러운 엉뚱 말에 사람들은 보통 표정을 찡그리거나 냉소적으로 반응하는데, 사장님 아줌마는 달랐다. 부정스러운 말을 긍정의 힘으로 뒤엎는 걸 보니, 느낌상 보통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무림의 고수를 만난 듯, 쉽지 않은 분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두 번째는 이 글의 주제처럼 하나같이 많이 주는 인심을 가졌다는 공통점이다. 덮밥을 받은 순간, '이분은 내 위장을 힘들게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안 그래도 저렴한데 더 많이 주어 자꾸 오게 만들려고 하시는 걸까'라는 괜히 또 이런저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밥 위에 엎어진 덮밥을 바라보며 되돌리기에는 늦은 게 아닌가 싶어, 순응해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멈추고, 씹고 삼키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두 여자가 김밥을 사러 왔다. 한 여자는 들어오고, 한 여자는 밖에 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마음이 불편하셨는지 말씀하셨다.
“안으로 들어와요.”
“아니, 괜찮아요”
“밖은 추운데...”
그래도 그분은 꿋꿋이 밖에 서 계셨다. 가급적이면 남의 상황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나는 '아마도 저분은 시원한 걸 좋아하시나 보다'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남이 편안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하신 듯했다. 그렇게 참치김밥을 왕 두껍게 싸시고는 “많이 드렸어요. 마요네즈를 따로 더 담아줄까?”라며 역시 끊임없이 더 주려는 마음을 내셨다.
나는 덮밥 처리에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 고기가 너무 많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논어』에 나온 공자님 식생활 중에 ‘고기를 좋아했으나 밥보다 많이 먹지는 않았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밥보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속이 부대껴서 그런 것 같다. 주인공은 밥이기 때문이다.
“아줌마 밥 좀 더 주세요. 고기가 조금 남았어요.”
아주머니가 한 번 밥을 푸고, 다시 주걱을 밥솥에 넣으려던 찰나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줌마! 조금만 주세요.”
단골손님이 많아 아침 6시부터 문을 열어야 한다는 사장님 말씀을 알 것 같다. 논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子曰(자왈) 德不孤(덕불고), 必有隣(필유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덕이 있는 자는 혼자 고립되는 일이 없어서 거주하는 곳에 늘 이웃이 있다는 말이다. 가끔 단번에 관계를 끊어 혼자가 되는 상황을 곧잘 마주하기에 이 말은 내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덕(德)있는 김밥집에는 늘 찾는 이웃 같은 단골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