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 8장
며칠 전 어느 대학 교수가 교수직을 내던졌다. 내던지면서 한마디 하기를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였다. 실제로 돈이 없는 건 아닌 거 같고, 아마도 ‘내가 이 교수직에 연연해서 내 할 말을 못 하겠나’라는 정도의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괜스레 ‘돈이 없다’는 말을 빌린 게 불쾌하다. 난 정말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말이 언제부터 유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말을 술자리에서 큰 형님도 하셨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50살 초반의 큰 형님은 가오쟁이다. 가오를 중시하신다. 가오는 신중함과도 맥이 통하는 말이다. 가오를 중시하시기에 말과 행동이 차분하고 느리고, 또 신중히 깊게 생각하는 성격이다. 어느 날은 안 빠지는 똥콜들은 바라보며 “이 똥콜들이 안 빠지는 데는 다 자기만의 사연이 있어.”라며 깊은 우수에 잠긴 듯 말씀하신다. 그렇게 공감은 하되, 본인이 잡지는 않으신다.
그러면 나는 또 쉽게 생각한다. ‘행동은 없고 말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약 잡기 시작한다면, 힘만 들고 돈은 안 되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렇게 살면 현 자본주의 시대를 혼자서 역행하는 꼴이 돼버린다.
어쨌든 그렇게 늘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시기에 분위기 자체가 무겁다. 그래서 쉽게 부화뇌동하는 일도 없다. 농담할 때도 본인은 늘 진지하다.
“내가 지금까지 남들과 싸워서, 세 대 이상을 맞아본 기억이 없어. 형은 세 대 맞으면, 정신을 잃거든.” 이런 농담도 과거 추억에 잠긴 듯 무겁고 진지하다.
늘 그러한 무게감으로 큰 형님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일에 있어서도 늘 꾸준히 열심히 하시며 모두를 리드하신다. 게으른 동생들을 격려하고 밀어주기를 좋아하신다.
“형님 이제 힘든데 PC방 가서 쉬시죠!?”
“병선아... 아직은 아니야.”
그 특유의 무게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은 동생들이 상담하러 오게끔 만드는 믿음감을 준다. 다른 사람들의 개인 생활에 관심이 없이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나와는 많이 다르시다. 늘 챙기고 물어보고 들어주며, 조언하기를 잘하신다. 그런 형님의 무거운 신중함을 매번 보노라면, 『논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不重(부중), 則不威(즉불위).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다.
사람이 말과 행동을 늘 가볍게만 한다면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을 가볍고 우습게 취급할 것이다. 그렇기에 말과 행동에 무게감과 신중함이 없으면 위엄있어 보이는 분위기도 없게 된다. 같이 일하는 큰형님을 보면 늘 무거운 신중함이 있어, 배워야 할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을 챙기는 자질이 부족한 나는 가끔 정신교육을 받기도 한다.
"병선아... 형이면 형 노릇을 해야 돼."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책임지는 위치가 되는 게 싫어서, 너무 가볍고 천방지축으로 살아온 느낌이 있다. 사회적 룰도 다 거부해왔던 편이다. 내가 정한 게 아니어서다. 나의 형님 자리를 지금 형님을 비롯해 여러 형님이 거쳐 갔지만, 나를 길들이는 데 성공한 형님이 있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늘 형들을 위에 두고 따랐던 것은 아마도 형들에게서 느껴지는 그 무언가를 얻고 갈구했던 듯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소유하고 싶지는 않기에 거부하는 옹고집이 있었다. 그 무거움에 따르는 책임감은 느끼고 싶지 않고, 그냥 옆에 두고 대리만족만 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성인이라면 자기 밥값은 스스로 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밥 사기를 꺼렸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실은 돈을 쓰기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 나에게 ‘돈에 민감하다’고 했던 문래동 형의 조언이 맞는 것이다. 나는 돈에 민감하다.
이제 종종 남들을 위해 돈을 써보는 연습이 필요한 듯하다. 쓰다 보면 책임져야 할 무언가가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이 삶의 가벼움이 어느 정도 무거움을 찾아, 삶의 신중함으로 자리 잡히지 않을까. 무게가 잡혀 신중해져, 위엄있는 안정감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느 정도 무게감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혼자 가볍게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