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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May 27. 2024

휴머니즘이라는 헤게모니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이 책은 다낭행 비행기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런칭을 앞두고 야근을 반복중인데,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출근할 수 없다고 한다. 내 근무 시간이 법정 근무 시간을 다 채웠다고. 3월 마지막 날인데 느닷없이 리프레시가 주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씻고 피아노를 치고 나서 뭐하지, 하고 있는데 문득 이 책 독후감을 안썼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3주 전 베트남으로 떠났던 휴가 때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사르트르가 1946년 대중들을 상대로 한 강연의 속기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1946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보면 바로 눈치챌 수 있지만, 이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잿더미가 된 유럽에서 사람들이 합리주의의 붕괴를 목도하던 시대이다. 당시의 유럽인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인간에 대해, 인간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반성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 땅에 떨어진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류애를 도모해야 했다. 민족주의, 자유주의, 공산주의 등 여러 사상들이 새로운 담론이 되기 위해 몰려 나오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인간주의, 즉 휴머니즘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감히 저지를 없을 것 같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학살의 목도를 겪은 인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어떤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담론의 중심에 잃어버린 인간성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유럽에서 그 ‘인간성의 회복’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며 일어섰던 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다.


마르크스주의 이전의 인간관은, 신과 관련되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기독교적 인간, 혹은 이성의 이름으로 새로 재단된 형이상학적 인간이었다. 둘 다 구체적, 실재적 인간이라기 보다는 실제 사회로부터는 단절된 추상적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인간관을 거부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인간은 실재적인 것이다.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다. 계급이라는 구조는 어떤 특정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원래 구조로서 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그러한 인간을 혁명으로 구원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목표였다. 이런 관점에서는 공산주의자야 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자, 즉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즉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는 “마르크스주의는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사르트르의 입장은 그가 전쟁 기간 동안 포로 수용소에서 겪었던 경험으로 극적으로 변화하는데, 본래 초기 사르트르는 니체적 개인주의자로, 계급 혁명을 목표로 하는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모든 공동체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예를 들어 사르트르는 소설 <구토>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실컷 비웃는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이란 이유 없이 태어나 동의 없이 죽는 존재다. 삶의 우연성 자체를 부조리하다 말하는 초기 사르트르는 (그 나름대로 깊은 철학적 통찰이 담겨 있음에도) 확실히 안티-휴머니스트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탈라그의 포로 수용소에서 사르트르가 겪은 공동체의 경험은 공동체에 대한 사르트르의 입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수용소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은 공동체에 맞서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수의 개인으로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인간 공동체의 적과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후기 사르트르는 극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로 전향하여,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결합을 모색한다. (이 부분에서 사르트르는 구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한 순간에 붕괴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써보겠다. 서양 철학사에서 단연 최고로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이다)


여튼 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사르트르가 안티-휴머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전기 입장을 일부 유보하고, 휴머니즘적 실존주의를 세우는 후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강연록이다. 사르트르는 이 강연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입법자(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 내는 자)가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른 것들과 완전히 다른 존엄함을 가져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실존주의야 말로 휴머니즘’인 것이다.


실존주의는 대단히 매력적인 철학이다.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다른 철학과 독립적으로 읽기 시작할 수 있는 철학 사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로 실존주의를 입문하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위와 같은 전후 맥락을 알지 못하면 대체 이러한 논의를 왜 하고 있는 건가, 싶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실존주의가 궁금해지신 분이 있다면, 아래 책으로 입문을 권한다.


야, 날씨 좋다. 조금 걸으러 나가봐야겠다. 양재천에 벚꽃이 만발할 것 같다.




https://blog.naver.com/iyooha/22222357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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