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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Oct 18. 2021

자네, 아직도 사람을 믿나?

입원실. 내일 수술이다. 보호자 상주가 불가능한 병실에 배정되어 혼자 앉아 있다. 이번에 담낭 제거 수술을 앞두고 CT 검사를 했는데 제법 큰 자궁근종이 발견돼서 자궁근종 제거 수술을 동시에 진행한다. 덕분에 수술 시간도 4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의식 없이 타인에게 온전히 내 몸을 맡기고 있겠구나. 최고의 의료 기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의사선생님들께서 련히 수술을 잘 해주실까만은 전신마취 수술이 처음이다 보니 긴장이 된다.


오늘 오전에 입원실이 배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샤워를 했다. 머리를 어제 아침에 감았는데 저녁에 다시 감고, 오늘 아침에 또 감게 된 거다. 아기 낳으러 가기 전날 밤에도 결연한 마음으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충 빨리 씻는 대신 샤워를 오래 했다. 마음을 다잡는 의식처럼...  샤워를 하고 나서 바디로션을 바를지 말지 잠시 망설였다. 건조한 병실에서 며칠 있을 내 피부를 보호해 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수술하는데 괜히 뭐든 바르면 안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배는 빼고 팔다리만 바르는 것으로 자체 협상 종료. 고생할 내 몸, 깨끗이 씻고 로션도 촉촉이 발라주고 싶었다.


그동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오만 상상이 순식간에 머리에 들어찼다. 근종인 줄 알았는데 막상 열어보니 암이더라,  수술이 잘못돼서 어쩌고 저쩌고... 물론, 하나도 도움 안 되는 생각들이었다. 병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생각만 많아질 것 같고, 어차피 남편은 병실에 같이 있을 수도 없어서 같이 1층 로비에서 이어폰을 끼고 탭으로 넷플렉스 드라마를 시청했다. 시간이 금방 가서 좋았다. 하지만 저녁 시간 이후로는 이런저런 안내를 받고, 동의하고, 항생제 검사 등 수술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남편은 귀가하고 나는 병실로 돌아왔다. 드라마에서는 환자는 누워 있고 보호자가 설명 듣고 있던데, 여기는 보호자 입장이 금지돼 있어서 내가 직접 설명 듣고, 질문하고, 서명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홀로 직면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내일 수술을 마치고 나면 아무 생각 없이 푹 자면서 쉬면 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수술 후 최소 두 시간 동안 잠들지 말고 열심히 심호흡과 기침을 하면서 수술 시간 동안 눌려 있던 폐를 펴줘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합병증이 생긴단다. 모레부터는 1~2시간에 10~20분 동안 계속 걸어야 한단다. 내일은 하루 종일 금식인데 물도 안 된다고 한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도 방심하면 안 되겠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을 하는 나도 이런데 중병 걸린 사람들 마음은 오죽할까? 요즘 같은 가을날,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잎만 봐도 눈물 날 것 같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치료 과정을 겪으며 외롭고 두려운 마음이 들 것 같다.


그런데 이곳에 있다 보니 누군가의 친절이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 여기 간호사님들이 너무나 친절하시다. 내 몸을 소중히 여기고 위해 주시고 마음까지 보듬어주시는 기분이다. 그래서 보호자도 없이 혼자 낯선 병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 마스크를 썼지만 다정하게 웃어주시는 예쁜 눈이 진실되고 정겹다.

 '아, 내가 안전한 곳에 와 있구나.'

무슨 일이 없도록 이분들이 날 잘 돌보고 지켜주실 것만 같아서 안심이다. 내가 지금 이분들을, 내일 내 몸을 수술하실 의사 선생님들을 믿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안할까? 다른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내가 아프고 힘이 없을 때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 같다.


"자네 아직도 사람을 믿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대사다. 그 세계에서는 불만 꺼지면 아수라장이 되어 서로 죽이기 때문에 잠도 마음 편히 잘 수가 없다. 불침번을 서며 쪽잠을 자야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이 세계는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곳.

잘 될 거다. 이분들의 친절한 보호 안에서 꿀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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