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의와 불의의 싸움이지."
영화 '한산:용의 출현'을 보았다.
권위적이고 말하기 좋아하는 원균 같은 정치인은 예나 지금이나 수두룩한 것 같다. 정쟁을 일삼고, 사익을 탐하면서 위기 상황에서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사람들이다. 함께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다. 영화에서 원균은 다행히 이순신에게 큰 위협이 되진 못했다. 이순신은 원균의 경지를 훨씬 초월한 사람이었으므로...
'한산'. 영화 속에서 이순신은 '한산'을 클 한, 뫼 산, '큰 뫼'라고 하며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이 한산이 진정 큰 산이 되어 우리 산천을 지켜내길 바라보세나."라는 대사처럼, 한산은 우리나라를 지켜준다. 그것은 바로 이순신 본인이 아닐까?
이순신은 말이 없었다. 화를 내지도 않고 웃지도 않았다. 큰 산처럼 말도 없고, 화를 내지도, 웃지도 않으면서 초연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럼으로써 외부 적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낸 사람. 이순신이 큰 뫼, 즉 '한산'이었다.
의와 불의의 싸움. 영화 속 포로는 이순신에게 "대체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의와 불의의 싸움이지."라는 이순신의 대답을 듣고, 전투 중 자신이 보았던 두 리더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순신은 부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앞장서는 리더였고, 적장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부하를 방패 삼는 리더였다. 왜가 조선을 침략했으니 그것으로도 불의와 의의 싸움이지만, 전장에서 보이는 리더들의 모습도 불의와 의를 대변한 것이다.
왕은 보이지 않았다. 전쟁 상황에서 왕의 위치와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당시만 해도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곧 왕을 지키는 것을 의미했고, 군사들은 왕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 그런데 왜군은 히데요시가 황금부채를 보내주며 격려를 하는 반면, 조선의 왕 선조는 의주로 도망간다. 여차하면 명으로 망명할 계획이다. 왕이 사기를 북돋워주기는 커녕, 왕의 비겁한 행동으로 인해 민심 이반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선조(宣祖)는 국가위기상황에 앞서 일본의 침략을 내다보지 못했고, 전쟁 중에는 도망가기 바빴으며, 전란 뒤에도 난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오랜 세월 지켜온 소중한 우리 문화재가 많이 소실, 훼손되거나 침탈당했는지는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 역사에 그런 왕이 있었다는 것이 불행이다.
"또 이순신이야?"
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순신 장군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차례 소설,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내려지기 마련인데도,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만큼은 한 번도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는 늘 지혜와 용기를 갖춘 영웅으로 감동을 주었다. 수적인 열세는 물론, 무기도 왜군의 총에 화살로 맞서 싸우면서도, 그는 여러 차례 기적 같은 승전을 거두었다. 자신의 노력과 성과를 크게 인정받기보다는 억울한 모함과 견제를 받으면서도 견디며 이겨냈다.
우주 탐사를 하고 최첨단 무기와 로봇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 노를 젓는 목선에서 무거운 갑옷을 입고 활을 쏘는 전투 장면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속 전투기가 하늘을 날고, 드론과 레이저를 활용한 전투를 하는 이 시대에 웃통을 벗은 사람들이 노를 저어 배를 움직이고 덩치로 밀어붙여 배를 부수는 조선 시대의 전투 장면은 원시적이다. 그럼에도 지형과 물살, 적군의 심리를 살피며 고도의 전술을 펴는 이순신 장군의 지략은 빛이 난다. 무엇보다 이전에 없던 학익진 진법을 구상하는 기발함과 더불어, 장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을 생각하며 배치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는 구성원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의를 향한 마음'은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준다. 많은 것이 변해도 인간 본연의 심리에는 의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 생각하고, 바른 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이 영화는 이순신 같은 훌륭한 장군뿐만 아니라 한 여인도 '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수 있음을 보여준다(기생- 김향기 역할).
'정의가 있는가?'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 회의를 느낄 때가 많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도 현실과 영화를 철저히 구분할 것이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한 볼거리일 뿐, 사람들의 사고와 현실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영화 보고 생각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라며, 단지 거북선이나 전투 장면이 멋있었다고 감탄하는 것으로 끝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제작비가 얼마 들었는지가 궁금할 수도 있겠다.
선조(宣祖)는 도망갔지만, 선조(先祖)들이 지켜낸 나라. 왕이나 벼슬아치들의 무능과 탐욕으로 고통받았던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민초들은 분노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조선의 땅과 백성을 지킨 것은 왕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이었다. 목숨 걸고 싸웠던 병사들과, 저항하거나 고난을 감내하며 살아간 백성들이었다.
이 땅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의를 향한 마음'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경쟁과 부동산에 가려져 예스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아닐까? 헛헛한 마음을 영화관에 앉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영화는 즐거운 마음으로 보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인데 이런 무거운 감상평 따위 집어치우라고 말하지 않을까?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살아 돌아오면 어떨까? 큰 뫼 같은 사람. 용을 다스리는 사람.
한산: 용의 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