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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Oct 22. 2023

뭐 좋아하세요?

세계적으로 아이큐가 높고 부지런하다고 소문난 한국인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질문이 바로

“뭐 좋아하세요?”

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많은 경우 웃으며

“아무거나요.”

라고 답한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음식점 메뉴에 ‘아무거나’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난 그 메뉴를 선택한 적이 있다(모둠안주였다^^;). 아무거나 먹어도 되고 아무 데나 가도 된다는 것은 어리석게 보일 만하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실제로 모르고 있거나 알더라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 같다. 타인이 어떤 음식, 색깔, 장소, 활동을 좋아하는지 꿰뚫고 있으면서 정작 본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좋아하고 언제 행복해지는지 잘 모른다면 자기 자신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이다.


나와 아이 역시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아이 친구들이 1박 2일로 여행을 한다고 해서 따라갔다. 아이 셋에 엄마 둘. 숙소 예약을 비롯해서 놀거리, 먹을거리 등 아이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다른 엄마의 추진력이 놀라웠다.


그런데 여행 전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 나와 아이는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저녁으로 먹고 싶은 메뉴, 아침으로 먹고 싶은 메뉴, 마시고 싶은 음료, 놀이의 종류와 필요한 준비물 등 제시해 주신 표의 빈칸을 채우기가 어려웠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만큼 빨리 응답해 줘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 뭐라고 하지?’

하면서 시험지를 앞에 둔 수험생처럼 한참 동안 결정을 못 했다.


결국 음료는 둘 다 ‘물’이라고 했고, 저녁 메뉴와 아침 메뉴 모두 이미 채워진 내용을 보고 따라 했다. 저녁은 ‘고기’, 아침은 ‘빵’. 나는 그 외 구워 먹고 싶은 것에 ‘파프리카, 파인애플, 버섯, 양파,…’라고 다른 엄마가 잔뜩 써 놓은 것을 보고 ‘00 엄마와 같은 것’이라고 썼다.

“이게 뭐예요?”

라고 아이가 물을 만했다.

“나도 이거 좋아해!”

라고 항변했지만 내 색깔이 없어 보이긴 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과자를 먹고 싶다고 해서 무슨 과자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무거나요.”

였고, 카페에 가서 무슨 음료 먹고 싶냐고 물었을 때도 대답은

“아무거나요.”

였다. 그런 대답이 더 힘드니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닦달해서 각자 원하는 과자와 음료의 이름을 받긴 했지만, 이후에도 “뭐 먹을래?”, “뭐 하고 싶어?”라는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은 반사적으로 “아무거나요”였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탐색하는 것조차 귀찮아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자신의 취향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상대를 배려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취향을 먼저 내세우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짜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하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는 사람은 과연 매력이 있을까? 무채색은 어디에든 무난히 어울릴 수 있긴 하지만, 특징이나 매력이 적다.


좋아하는 것이 더 정교해지고 구체화될 때, 본인 자신도 만족감이 커지고, 그 사람의 색깔이 뚜렷해질 것이다. 자기 색깔을 찾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매력적이다.


“뭐 좋아하세요?”

이 질문에 분야별로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나에 대해 탐색해 봐야겠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며 만족감을 느끼고, 남들 앞에서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면 좋아하는 것들이 명확해진다."

-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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