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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Aug 08. 2020

B형 남자는 바람둥이다.

사람들은 왜 범주화하는 것을 좋아할까?
내 고향이 제주도라고 말하는 순간,
"제주도 여자는 강인해요!"
라는(혹은 그와 내용이 유사한) 말을 숱하게 들어왔는데 최근에 또 듣게 되었다. 그들이 만나본 제주도 여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저 아는 사람도 한 명 제주도 사람인데..."
하면서 근거를 대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물질(해녀일) 했냐는 말도 들어봤다.
서울 사람들에게
"서울 사람들은 깍쟁이잖아요!"
라는 말을 하면 어떤 반응을 할까?

물론 지역적 특성과 환경의 영향으로 어느 지역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성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일반화해 버리고 고정관념을 갖는 것이 아닐까?
 
다음은 내가 겪은 실제 사례이다. 학교를 옮기고 처음으로 학부모 총회를 한 날,  학부모님들과 만난 후 교실을 나섰다. 반장 어머니께서  정리를 같이 해 주시고 함께 이동했는데 복도에서 나를 붙잡고 한참을 이야기하시는 것이었다. 지난해 담임선생님 험담이었다. 적당히 끊고 가고 싶었는데 속사포같이 쏟아내셨다. 반장 어머니였지만 그날 처음 뵌 분이었다. 그런데 내용이 이랬다.
"그분이 아이한테 욕을... 그 선생님이 제주도 사람이라서 아주 집요하고 끈질긴 면이 있었어요. 해녀 기질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 어머니, 저도 고향이 제주도예요."

비단 지역으로만 분류하는 것이 아니다. 별자리, 혈액형, 출신학교,...
'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이래.'
라고 쉽게 결론 내리는 게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그중에서도 겨우 한 손에 꼽히는 혈액형 유형별로 사람의 성격을 가르는 것이 가장 이해가 안 된다. 한때 유행이었던 'B형 남자'는 지금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설명이 많다.
 '다소 무뚝뚝하지만, 센스가 넘치고, 로맨틱하고, 단순한데, 매력이 넘치고,... '
그렇게 멋진 B형 다 어디 갔어~? 내 남편도 B형인데 왜 이리 달라~~?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호탕하고, AB형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도 언뜻 보기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예외가 너무 많다(물론 그럼에도 대학교 때 만난 한 선배는 처음 만난 사람과 몇 마디 나눠보고 혈액형을 정확히 맞춰서 매번 놀랍긴 했다). 과학적으로도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이미 밝혀진 상태다.

심지어 나름 정확하다는 MBTI 검사 결과도 나는 100% 신뢰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보는 순간 고민하지 말고 끌리는 대로 응답하라고 하는데 정말 고민이 된다. 그리고 응답을 마친 후에도 영 찜찜하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나요?'
-> 사람 나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밤새 파티를 열어도 안 피곤하지만 싫은 사람들이라면 잠시도 힘들다. 그리고 파티가 어제는 좋았다가 오늘은 싫을 수 있고 내일 되면 다시 좋아질 수도 있다. 일 추진하는 것도 그렇다. 어떤 때는 주도적으로 밀고 나가지만 어떤 때는 손 안 대고 구경만  한다. 매번 상황과 상대방이 달라지고, 내 심신 상태도 변하는데 단정적인 짧은 문장에 대해 '난 이렇다'라고 확신 있게 대답하기가 나는 영 어렵다. 그러다 보면 나는 점점 미궁에 빠진다. '내가 이걸 좋아하나?', '내가 그런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대충 찍다시피 응답한 검사에 대한 결과가 나와도 그저 시큰둥하다.  주어진 카테고리 안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기분이 든다.

사람은 각기 다 다르고, 그 자체로도 변할 수 있는  유기체다.(물론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심지어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같은 가정에서 자라난 쌍둥이도 서로 성격이 다른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어떤 연결고리만 있으면 사람들을 범주화해서 이해하는 것이 쉽고 편하긴 하다. 하지만 그 일반화와 관념이 불편할 때가 많다. 그것은 내가 속한 집단을 싫어해서가 결코 아니라, 나도 나를 규정하기가 어려운데 남들이 쉽게 나를 규정하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분명 과거의 나와 다르고, 미래의 나는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가수 아이유는 잡지 <지큐> GQ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인생에 대해서, 가치관이나 신념이 확고한 사람도 아니고요, 상황에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히는 사람이에요. 딱 말을 하기가 어렵죠. 1분 후에 바뀔 수도 있으니까. 네, 저는 이렇게 바뀌는 사람이에요."
 '나는 바뀌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아이유의 모습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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