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의 배우 · 8개의 색깔
fantastic scar pink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기획된 Fairy Pitta는 2011년 5월 18일 출간되었습니다. 독립출판으로 제작되어 블로그를 통한 판매와 몇몇 소규모 동네 책방에만 입고되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당시만 해도 '독립서점'으로 불리던 곳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을 닫거나 '동네 책방'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크고 작은 물결들이 세상을 휩쓸고, 우리들이 그 물결에 휩쓸려가거나 버티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Fairy Pitta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것입니다.
브런치에서 Fairy Pitta를 다시 불러내 봅니다. 5년 전,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일을 해보겠다던 무모함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무모함도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무모함도 갈고닦으면 제법 쓸만한 것이 된다는 것을 되새기고 싶었습니다.
Fairy Pitta는 팔색조(八色鳥)를 의미합니다. 여덟 명의 연극배우들을 여덟 가지 색깔에 대입해 사진 찍고, 인터뷰하고, 글을 썼습니다. 여덟 명의 연극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고, 화를 내거나 행복해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fantastic scar pink도 함께 울고, 웃고, 화를 내거나 행복해했습니다. 각각의 연극배우들은 여덟 가지 색을 모두 갖고 있기도 했고, 어느 한 가지 색깔만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색깔인지는 당사자들이 제일 잘 알고 있겠지만, Fairy Pitta를 보게 될 당신도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연극배우들이 가진 그 색깔, 당신도 갖고 있을지 모를 그 색깔에 대해서 말이에요.
여덟 명의 배우, 여덟 개의 색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상처, 모양과 색깔은 다르지만 공통된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상처, 어떻게든 치유해야 하고 치유될 수밖에 없는 그런, 이미 분홍빛으로 물들어 새살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 상처 말입니다.
하필이면 상처에 주목하게 된 것은 fantastic scar pink가 '상처' 때문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fantastic scar pink의 구성원 모두, 왜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는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처의 모양이 나무의 옹이처럼 예쁘진 않았어도 그 상처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그룹의 이름을 고민하다 우연히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온갖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다 '세상 모든 상처는 환상적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론은 그대로 프로젝트 그룹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네, 세상 모든 상처는 환상적입니다. fantastic scar pink가 주목하는 것은 붉은 피를 뚝뚝 흘리는 날것의 상처가 아니라 아물어가고 있는, 새살을 만들어내는데 여념이 없는 분홍빛 상처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상처는 아무렇지 않게 새것을 준비합니다. 분홍빛 상처들이 만들어내는 새것은 전과 다름없어 보이는 새것이 아니라 조금 더 단단해진 새것이고, 그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분홍빛 상처'만큼 환상적인 것을 발견하지 못한 fantastic scar pink는 지금도 분홍빛 상처들이 선보이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연고도 바르지 못한 채 방치된 상처를 발견하면 사진으로, 글로 새살이 솔솔 돋아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