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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망설이고만 있었다. 처음 입구 앞 입간판에 '혼술 환영'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본 순간부터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일부러 바로 앞을 지나치기도, 건너편 가장자리로 멀찌감치 떨어져 지나치기도 하면서 망설이고만 있었다. 가게 이름과 메뉴들이 가볍게 한 잔 털어 넣기에는 '나 좀 비싸거든'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지갑 사정이 좋은 날은 손님들로 가득해 차마 문을 밀고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제법 손님이 많은 가게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사실 전작이 있었다. 회사에서 회식을 했다. 오픈런이라 생각하고 찾아간 횟집에 자리가 없어 2호점에서 본점으로 픽업을 와서 한 차에 우르르 타고 2호점에서 우르르 내려서는 우르르 계단을 올라갔다. 굳이 '우르르'라고 쓰는 것은 정말 덩치 큰 다섯 명이 던져진 테니스공을 향해 달려가는 강아지처럼 우르르우르르 몰려다녔기 때문이다. 회식 전부터 ㅅ은 나를 포함한 두 사람에게 술 금지령을 내렸는데, 내가 인정에 호소한 반면 또 다른 ㅅ은 '왜, 뭐, 몰라, 나 마실 거야'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굴었고 덕분에 나는 ㅅ의 당당함 뒤에 슬쩍 숨어 술을 마셨다. 그렇잖아, 대방어인데 그 기름진 생선을 어떻게 코 찡찡한 와사비하고만 먹느냔 말야. 그렇게 대방어 안주에 진로 한 병을 마신 우리들은 장어를 먹으러 갔다. 장어와 꼼장어와 오징어를 연탄불에 구워 먹었는데 나는 장어와 꼼장어 대신 오징어 몇 점과 진로 한 병을 마셨다. 이상하게도 취하지 않는 저녁이었다. 회식 전부터 툭툭 튀어나오던 ㅅ의 잔소리 때문이었을까, 사라진 두 시간의 아찔한 기억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었을까. 애매할 땐 둘 다겠지. 말갛고 하얀 얼굴의 나와 덩치들은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쿨하게' 헤어졌다. 늦은 10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고, 버스에서 내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나는 딱 세 잔이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주 후에 있을 명절연휴와 연휴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지레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큼 마셔서는 좀처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병의 소주를 품고 망설임을 끊어내고 가게에 들어갔다. 그닥 즐기지 않는 해산물로 입안이 기름지고 또 비렸기 때문에 -사실 바다의 맛을 제법 좋아하지만 그 날의 해산물에서 바다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규 타다끼와 소주를 마셨다.
가게에서 혼자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밥과 술에 집중하는 편이다. 스마트폰을 보지도 않고, 음악을 듣지도 않고, 밥을 꼭꼭 씹어 먹는다. 식사의 맛을 꼭꼭 씹어 먹는다. 안주에 들어간 재료의 비율을, 술을, 밤을 꼭꼭 씹어 삼킨다. 어쩌다 영감이라 쓰고 허세라 읽는 또다른 내가 불쑥 튀어 나오면 노트에 뭔가 끄적일 때도 있지만 웬만해선 그저 음식에 집중하려고 한다. 내 취향을 가늠하는 시간이라고 해두자. 아무튼, 그러다 문득 가게 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것들이 좋았고, 그 사이를 오가는 그림자들도 좋았다. 망설이지 말 걸, 좀더 일찍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걸... 망설임은 길어 봐야 소용 없다는 것을 환기 시키며 사진도 아닌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극강의 허세(?)를 부릴만큼 취했음에도 얌전히 규 타다끼를 꼭꼭 씹어 싹 비우고, 소주 한 병을 꼭꼭 씹어 싹 비우고, 공손하게 결재한 다음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에 또 가려면 얌전해야 한다. 앞으로도 얌전할 것이다- 일로 만난 사람에게 마음 주지 말자고 다짐해놓고 덜컥 마음 주고 후회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닌데 또 일로 만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줘버렸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안 하는 게 맞을 텐데 그냥 해버리는 나란 사람으로서는 마음을 줘도 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시간 따위 길어봐야 무소용이라고, 나에게 소곤거리면서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에라,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줘버리지 뭐. 마음이란 어디든 심어두면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열매가 되어 나에게 돌아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간다. 간혹 돌아오기도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도 좋지.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