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발과 소주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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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오늘은 또 무엇을 먹나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족발을 먹기로 했다. 동네 시장에는 족발 파는 가게가 모두 5곳 정도 있는데, 그중 한 곳에서만 종종 사다 먹곤 했다. 문득 다른 가게의 족발은 어떤지 궁금해 오며 가며 눈여겨보던 곳 중 한 곳에서 족발을 샀다. 이 가게에서는 ‘반 마리’에 1만 2천 원이라는 푯말을 붙여 놓았는데, 치킨도 아닌 족발에 ‘반 마리’를 붙여 놓은 것이 우습기도 하고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을 만큼을 파는 것처럼 느껴져서 낙점. 포장된 것이 살코기만 담아 놓은 것처럼 보여서 머릿속에 물음표가 두 개쯤 떴는데, 편의점에서 파는 족발이 아니고서야 정 없이 살코기만 담아 팔까 싶어 황급히 물음표를 지웠다. 호로록 저녁을 먹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지만 짐짓 가벼운 척 서둘러 집에 왔다.


중요한 것은 감춰져 있는 법

저녁 먹는 시간만큼은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공들여 영화 한 편을 골라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드디어 시식.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았겠다 싶었고, 양념이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살코기를 먹었으니 본격적으로 뼈를 뜯는다. 뭘 몰랐을 때는 그저 양을 부풀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에 동의한 적도 있었지만 내가 족발을 먹는 이유는 ‘뼈’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합법적으로 물어뜯을 수 있는 일은 족발 물어뜯기, 갈비탕에 든 갈비 물어뜯기, 갈비찜, 찜닭, 치킨이랑 또 감자탕의 돼지 등뼈랑 등갈비… 쓰다 보니 물어뜯어도 괜찮은 것들이 꽤 많다. 다람쥐 도토리 모아 묻어두듯 뭐든 잘 담아두고 묻어두는 편이라 물어뜯을 수 있는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 하루 종일 하지 못했던 말, 하고 싶었던 말들을 똘똘 뭉쳐서 몇 날 며칠이고 쌓아두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입이 근질거리는 것은 인지상정. 그럴 때 족발을 찾는다. 집에서 혼자 먹기에도 간편하고 격정적으로 물어뜯을 수 있으니까.

양손에 족발과 소주병을 하나씩 나눠 들고 뜯고 씹고 맛보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영화 속에서도 서로 물어뜯고 있다. 공교롭게도 족발 먹으며 보기에 좋았던 영화는 <커런트 워>. 족발을 물어뜯느라 조금 산만하긴 했지만 저열하면서도 우아하고 긴장감 넘치는 물어뜯기를 보고 있자니 생각은 또 엉뚱한 곳으로 튄다. 이래서 생각한 것을 바로 말로 뱉으면 안 된다. 어떤 생각이든 이게 상황에 맞는지, 맥락은 맞는지, 거칠거나 모난 표현은 없는지 등등을 점검한 후에 뱉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몇 가지 점검사항을 더 추가하는데 돌이켜보니 그러느라 제때 할 말을 못 해 담아두고, 쌓아두고… 아무튼, 생각이 어디로 튀었냐면 홍보마케팅. 좀 알려야 알아줄 텐데 어떻게 알려야 할지 방법도 모르겠고 방법을 안대도 막상 쑥스럽고 겸연쩍고 민망해서 또 못 알리겠고. 그리고 살아남는 것과 기록의 상관관계, 살아남지 못하고 이기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과 이기고 지고를 가르는 기준과 정당한 가치를 부여받는 것과… 편히 쉬려고 영화까지 틀었는데 또 생각이 복잡해진다. 과감하게 마지막 남은 족발을 뜯는다. 그 위에 소주를 끼얹는다. 응급처치 끝.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터져 나올 생각이지만 그건 그때 다시 처치하는 것으로. 그나저나 이 집 족발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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