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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라기 Nov 13. 2020

추천 리뷰5) 레드 데드 리뎀션 2

우리 모두가 아서다


출시 3일만에 8천억원어치를 팔아치운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2. 게임장인 락스타가 GTA 이후 7년을 갈아만든 게임이다. 엄청 재밌을 거라는 뜻이다.





레데리2도 GTA처럼 오픈월드다. 범법행위의 자유도가 높고 캐릭터마다 성격이 한 군데씩 뒤틀려 있다. 대책없는 줄거리 속에서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는 점이 락스타 게임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후후...더러운 짐승들의 안식처...그곳은 락스타...(타닥타닥)아 엄마 나가라고!




GTA랑 다른 점은 배경이 서부 개척시대의 미국이라는 것. 주인공인 아서는 갱단원에 속해 있다. 서부 카우보이...정말 이런 마이너한 장르가 먹힐까 싶었던... 프랑스혁명이 호그와트보다 더 생소하게 느껴지는 세대인데

그러나 락스타의 심폐소생술로 레드데드리뎀션 1편이 잘됐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름 기대했고 레데리2는 내 기대보다 훨씬 엄청났다. 




3호선 환승 기다릴때 폰보는 나같음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서는 갱단원이다. 본인 입으로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서부로 가서 작은 농장이나 하나 하는게 목표라고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비걸고, 돈 뺏고, 마차 털고, 강도질에 살인도 하고 엎친 데 덮친다고 같이 다니는 애들때문에 일도 잘 안 풀리는데 가능할까. 이건 마치 살뺀다면서 오늘 밤에 떡볶이 먹고 앉아있는 내가 내일 아침 후회할 것과 같이 명백한 얘기다.


안타까운 건 아서가 또 그렇게 천성이 나쁜 건 아니라는 점이다. 맘만 먹으면 착하게 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긴 한데 과정이 어떻든 결과는 항상, 간신히 자리잡은 곳에서 깽판 치고 야반도주 해야 하는 것으로 끝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부 시대'라는 소재로 만든 컨텐츠들은 대개 이런 규칙을 따른단다. 예를 들면 어벤저스와 같은 영웅물에 악당이 꼭 등장해야 하는 것 같은 규칙이다.




게임 속에서 캐릭터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맵 아무데서나 캠핑을 할 수 있는데, 한 번은 다른 갱들이 자기네 구역이라며 협박을 했다. 잘때도 편히 쉴수없는 아서...



물론 그런 모순이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오픈월드 장르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레데리2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답이라기보다 오픈월드 게임은 이래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고 본다.



일부 퀘스트를 통해 강도짓을 할 경우 보상 중 얼마는 항상 갱단 몫으로 돌아간다. 공산주의인지...?




오픈월드는 메인퀘를 통한 레벨업 + 서브퀘를 통한 자유도 즐기기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한다. 레벨업은 꼭 말 그대로 숫자의 증가뿐만 아니라 게임을 진행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컨텐츠가 더 늘어난다는 의미다. 레데리의 장점은 이 컨텐츠의 다채로움과 소름끼칠 정도로 디테일한 상호작용이다.


 


어우 추워




맵은 사계절을 모두 즐길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이 바뀌지는 않지만 그 대신 추운 지역과 더운 지역이 나뉘어 있어 가벼운 옷차림으로 호숫가에서 낚시를 할 수도 있고 털모자를 눌러쓰고 눈밭에서 말을 탈 수도 있다. 온도에 맞지 않게 너무 두껍거나 얇은 옷을 입으면 체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서부 시대의 장점은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술 먹고 행인에게 시비를 걸거나 도박을 해도 되고 그게 질리면 말 타고 산으로 나가서 사슴 잡고 토끼고기 먹으면서 캠핑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 하나하나를 할 때 무척 신경을 쏟도록 만들어 놨다. 예를 들면 동물을 잡고 나서 시체를 말에 싣거나 짊어져도 되고 가죽을 벗겨 가지고 다녀도 되고 고기만 구워 먹고 버려도 된다. 들판에서 약초를 캘 때도 뿌리, 열매, 줄기 등 어떤 부분을 채취하느냐에 따라 동작이 다르다. 디테일함 덕분에 어떤 요소를 갖고 놀아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오픈 월드'다. 맵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넌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까 그렇지




하물며 NPC들은 어떻겠나. 사람과의 만남은 훨씬 더 촘촘하고 복잡하다. 총을 들고 있으면 무서워하기도 하고, 반대로 호의적인 인사를 건네면 반갑게 받아준다. 물론 첨부터 시비조로 나오는 NPC도 있다. 그게 좀 짜증나면 싸워도 된다. 근데 주변 사람들이 재네 싸운다! 하면서 보안관에게 신고할 수도 있다. 그럼 벌금을 내야 해서 귀찮아진다. 얼른 도망가든지 안 그런 척 잡아떼거나 아님 얌전히 항복하는 등(권하지는 않음) 여러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밖에도 갑자기 말을 걸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다리 위에서 급습해 오는 적 갱단, 삥 뜯으려는 양아치 등도 맵 곳곳에 숨어 있다. 그냥 말 타고 돌아다니기만 해도 뭔가 할 거리가 계속해서 생겨난다. 그리고 재밌다.




처음에는 공략을 보지 말고 일단 돌아다녀 보자. 그러다 이런 거 발견하면 막 짜릿함.




레데리2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이 숨겨져 있는지 얘기하려면 따로 카테고리를 파야 할 정도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긴 한데 공식 가이드북을 살 것을 추천한다. 한글 서비스가 안 되긴 하지만 거의 모든 컨텐츠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할 수 있는 건 정말정말 많은데 그걸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가이드북은 꼭 필요하다. 앱스토어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구매할 수도 있고(미국 계정으로 결제해야 해서 좀 귀찮음), 종이책을 주문해도 된다(해외배송).





그래픽이 엄청 뛰어나진 않는데 하다보면 저기서 지도 읽고 있는 게 아서인지 나인지 헷갈릴 정도로 몰입된다.



물론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술집에 뛰어들어가 사람들에게 마구 총질하다 보면 금새 목에 현상금이 걸리며,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할 곳이 없으니 나쁜 짓만 골라서 하게 되는데 이게 또 괜찮은 건수를 찾기는 어렵다. 착하게 살려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재미가 없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아서가 틈틈이 일기를 쓰는데 읽다 보면 참 짠하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지도 않으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냥 태어나 살기 위한, 말 다루고 총 쏘고 사냥하는 그런 것들 뿐인데 세상은 자꾸 변해간다. 철로가 놓이고 전깃불이 켜지는 땅 위에는 지금까지 없던 '규칙'과 '법'들이 탄생한다. 생소한 변화들은 너무 빠르고 급하게 일어나 아서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가 나쁜 건지 변화 자체가 나쁜 건지 혼란스럽다고 토로한다.




인생에 허황된 꿈을 꾸고 보잘것없는 현실을 사는 처량하고 한심한 자식들. 사는 건 고통이다. 나도 그게 싫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더 싫다.

잭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것, 어리석음과 거짓이 가득한 이 짓거리가 아닌 평화와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아직도 그걸 원하기는 하나? 전부터 의심이 들었지만,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 헤르 스트라우스가 대금업을 다시 시작해서 나도 다시 돈을 걷고 다니고 있다. 솔직히 아주 역겹고 부끄러운 일이다. 총과 주먹으로 강도질하는 게 법을 지키며 돈을 갈취하는 거보다 정직하게 느껴지다니 참 이상하다.
- 난 그동안 어떤 사람이었지? 지금은 어떤 사람이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이지? 분노에 찬 곳인가, 아니면 사랑이 가득한 곳인가? 이건 지옥 갈 준비를 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구원받을 수 있는 걸까? 그런 건 동화 속에나 나오는 얘기인가? 인간은 별로 선한 동물이 아니다.
- 난 아직도 내 안에서 착한 구석을 보지 못했다. 그런 건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있겠지. 어쩌만 난 구원을 원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속으로는 언제나 죽기를 원했지.





레데리2 모바일 앱을 받으면 게임 속에서 아서가 쓴 일기를 읽을 수 있다(게임 내에서도 가능). 




어떻게 보면 게으른 날건달이 글빨 좀 세운 것 뿐 아닌가싶기도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왜냐면 이 게임이 재밌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했다면 게임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00년대 카우보이의 어떤 점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나?



그것은 두려움이다. 아서는 누구보다 강하지만 (주인공이니깐) 한편으로 사냥꾼에게 쫓기는 초식동물처럼 두려움에 민감하다. 산업화가 가져오는 거대한 변화가 자신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여기에 순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수록 그렇게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뚜렷해진다. 혼란스러움 속에 잘못된 선택이 겹쳐지고 언젠가 비극적인 결말 속에 소멸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괴로워한다.




아서는 항상 초조하게 사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나 빼고 모두 달려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속도에 맞춰 걸어가도 된다고 격려해 주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조차 짜증이 난다. 세상이 이렇게 팽이처럼 돌아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람. 뛸듯이 걷다 보니 숨이 찬다. 그래도 느린 것 같다. 더 빨리 걸을 수 없음을 아니까 화가 치민다. 내가 너무 멍청한 건가? 뭔가 달라져야 하나? 난 달라지기 싫은데... 누군가에 털어놓기는 시덥잖고, 혼자 끌어안고 있자니 우울한 생각들을 짊어지고 산다.




정말로,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인간 지능은 1만 년에 걸쳐서 발전해 왔는데, 기술 진보의 속도는 기하급수 이상으로 높다. 평생 말만 타고 다니던 아서가 어떤 원리로 태어났는지도 모를 기차와 자동차를 만나게 되듯 우리도 익숙함을 밀어내는 낯설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유행이 초 단위로 바뀌는 것만 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혼란과 갈등은 아서의 고민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모두가 아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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