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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코로나19 영향인지, 플스5가 망할 거 같아서인지, 라오어2가 망해서인지 몰라도 지난해에 비해 그다지 할 만한 콘솔게임이 보이지 않는다. 선호하는 게임 장르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나의 평가이기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몇몇 타이틀이 유저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은 틀림없다. 라오어2같은... 다만 유비케어의 파크라이6과 와치독스, 사이버펑크 등이 예약 판매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하반기를 기대해 보고 있다.
그 중에도 그나마 추천할 만한 게임 중 하나가 데스스트랜딩DEATH STRANDING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것도 지난해 말 출시 게임이다... 뭐 만남의 늦고 빠름이 중요하겠는가. 까마득히 전에 나온 고전게임이라도 오늘 재밌게 했으면 오늘의 경험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거 아닐까나.
사실 데스 스트랜딩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었다. 지인이 '쿠팡친구 게임이라는데 해봐'라고 추천해 줘서 시작했는데, 저 문장은 이 게임이 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한 줄로 설명하기 좋은 표현이긴 하지만, 게임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최근의 표현을 쓰자면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 라는 묘사가 더 어울릴 거 같다.
왠지 좀비를 잘 잡을 것만 같은 마스크의 아저씨가 게임의 주인공이다. 갑자기 나타난 외계인 때문에 인류가 거의 멸종하게 된 상황에서 택배원으로 부지런히 활동 중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인류는 죽음의 물질을 뿜어내는 외계인들을 피해 숨어 살며 종말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고, 죽음의 물질에 면역이 있는데다 전 대통령의 아들(...)인 주인공이 섬처럼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배달한다는 줄거리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진 요즘 세상의 모습과 비슷하다. 미래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연출에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 맵이 꽤 볼만해서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고, 배경음악의 느낌이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다. 게임 특성상 컨트롤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기 때문에 독특한 게임 속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다. 오픈월드가 차고 넘치는 현 게임 시장에서 쉽게 먹히기 어려운 외계인 테마를 살짝 철학적인 양념을 가미해 잘 살렸다는 점이 좋다.
오늘 1시 안에 결제하면 바로 출발한대
게임 제작자는 메탈기어 시리즈로 유명한 코지마 히데오로, 이 게임을 만들 때 '지금까지 나왔던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이라며 자신만만했다고 한다. 게임을 해보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픈월드의 메인 요소인 적과의 전투나 아이템 탐색의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극히 부차적이고, 아까 언급했듯이 짐을 싣고 아무도 없는 맵을 혼자 돌아다니는 방식은 매우 새롭다.
게임에 점차 몰입하면 세계관이 현대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미래적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복잡한 심경이 든다. 배경은 참 이쁜데 위협적인 외계인이 돌아다니는게 무섭기도 하고, 사람은 당연히 없고 때로는 적조차 없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나오는 노래는 좋고 그렇다. NPC들과도 거의 원격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실제로 만날 일은 없는데 이야기는 착착 전개된다.
유일하게 타인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는 나와 같은 게임을 구입한 실제 유저들 혹은 npc들이 돌아다닌 곳을 방문하면 볼 수 있는 '좋아요' 표시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없다 보니 나중에는 이걸 찾는게 꽤 큰 재미로 느껴진다.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백만 유투버들의 심경이 느껴지고 막 그런다.
다만 아직 봉건사회에 머물러 있는 일본 출신 제작자들의 한계가 그렇듯이 남캐의 외모는 다양한데 여캐는 하나같이 예쁘고 헐벗었으며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말을 남기기 좋아한다는 점에서 좀 김이 샌다. 게임 속 요소를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하는 것 같긴 한데 이야기를 설명하는 방식이 좀 촌스럽고 이해가 잘 안 된다. '셰계를 구해줘' 이딴 신비로워 보이는 은유법만 잔뜩 쓰는 캐릭터들이 나와서 움직여 봤자 별로 멋있지도 않다는 것을 많은 일본 제작자들과 게임 회사들이 깨달아줬으면 한달까. 코지마상도 그런 일본 회사가 싫어서 뛰쳐나온 걸로 알고 있지만. 어이어이 진짜냐고-!
이런 대사 하지 말라고
연출이 좀 멋져서 몇 시간 구경할 맛은 나는데, 유저를 엔딩까지 끌고 갈 만한 뒷심은 없는 게임이다. 만약 도전하실 분이 있다면 오픈월드 게임 하듯 메인과 서브퀘를 일일이 다 깨려 하지 말길 바란다. 아마 한두시간 안에 질릴 것이다. 메인 퀘스트만 쭉쭉 해도 전개에 큰 지장이 없고 오히려 그렇지 못할 경우 전개가 너무 느려진다. 참신성과 재미를 둘 다 살린 장점은 분명히 있지만, 뭔가 쫀득쫀득한 긴장감이 덜하다. 한우리 매장에서 중고 타이틀 왕창 팔고 나서 데스스트랜딩 중고 있어요? 물어본 다음에 2만 원 안팎이라고 하면 살만 한 정도다.
거리가 멀면 배달팁이 추가된다.(진짜로)
제작자가 이런 걸 보여주려고 게임을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데스스트랜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현실적인 미래를 묘사하는 게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핵폭탄이 쾅하고 떨어지거나 천재지변으로 지구 절반이 쓸려나가는 그런 갑작스러운 충돌이 아니라 서서히 일상을 침입해서 우리를 조금씩 갉아먹는 말 그대로 병균과 같은 것들로 인해 인류가 쇠퇴하고, 그런 가운데 서로가 단절되고, 불신이 늘어나고, 결국 어떤 큰 사고로 인한 깔끔한 죽음이 아닌 길고 고통스러운 멸망의 과정을 걷는 미래를 잘 그리고 있다. 사건이 펑 터지고 원인과 결말이 딱 떨어지고 그걸 주인공이 해결하고 이런 걸 좋아하는 유저들이 선호할 만한 게임은 분명 아니다.
도가니 아작나는 내리막길에서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게임을 계속 하다 보면 꿈도 희망도 목적도 없이 떠돌면서 지나가다 보이는 좋아요 버튼 누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아 지내는 주인공(출근길의 나?)에 굉장히 이입하게 된다. 딱히 나 개인을 향한 선의도 아닌데 좋아요가 잔뜩 눌러져 있는 건축물 같은 걸 보면 왠지 나 심심할까봐 누가 눌러준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 무차별적인 악의와 악플이 생각나기도 하는 게임이다.
우리라고 뭐 다를까. 심심해서 아무데나 끄적거린 글에 'ㅋㅋㅋㅋㅋㅋㅋ' 댓글 하나만 달려도 기분이 좋아지고, 갑자기 급발진해서 부모님 안부를 묻는 댓글을 보면 괜히 베개에 머리 박고 울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남에게 영향을 받게 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할수록 괴롭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적당히 구멍 뚫린 체를 가지고 있다가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만 걸러서 건져내는 거다. 남아 있는 쓰레기는 남을 위해서 깨끗이 치우고,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나의 이런 선의를 조금이나마 알아주고 같이 동참해줬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면서 지내면 좋겠다. 늘 말하지만 정신승리는 몸과 마음에 건강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우리 과몰입하지 맙시다. 그리고 제 블로그 오셔서 자격증 정보도 보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