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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주 Feb 18. 2021

제로콜라

누군가 자기 통제의 꿈을 꾸는가 / 일기이며 에세이


제로콜라를 마신다. 너무 달다. 짜릿하다. 한동안 제로콜라로만 수분 섭취를 하다가 요즘에는 물을 많이 마시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제로콜라가 좋다. 아마 좋을 것이다. 너무 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늘 오전 10시에 일어나서 이상했다. 네 시간 잤을까? 일어났는데 피곤하지 않았다. 이틀인가 사흘 연속으로 그랬으므로 이상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피곤하지 않으니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더 자야 한다. 또 먹어야 한다. 그러나 자거나 먹으면 나갈 수 없다. 휴식과 활동이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아니지만, 아님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 너무 밀착한 감정들.


무언가 하려면 쉬어서는 안 돼. 쉰다면 무언가를 할 수 없어. 먹어야 하고 자야 하는데 또한 나가야 한다. 그 셋을 동시에 할 수가 도저히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생각들을 계속 반복했다. 자야 한다, 먹어야 한다, 나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를 하면 다른 하나를 실패하게 되고, 실패란 이런 것이다,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무를 저버리니까, 죄가 되잖아. 그러므로 자거나 먹거나 나가면 어떻게든 죄를 짓게 될 것 같았다.


항상 의무로 나타나는 문장들. 그러니까, 해야 하는 것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고 벌을 받는 것들.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으므로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먹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가면, 저녁을 먹을 수 없겠지? 그러니 저녁을 먹으려면 나가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이상했다.



그러다가 잤다. 여덟 시가 되었고 상쾌했다. 몸이 가볍다. 저녁을 먹었다.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있다!



나는 요즘 저 표현을 보면 너무 웃기다. 내가 알기로 이 표현이 나오는 맥락은 별로 웃기지 않다. 가령 이런 것이다. 익명의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는 댓글을 단다. 공격받은 사람은 화가 난다. 그때 그 익명의 누군가는 그 사람이 분노하도록 조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니까 웃기다기보다는 상당히 끔찍한데 나는 그런데도 이 표현이 너무 웃기다. 누군가의 알량한 마음이 너무 투명하게 드러나서. 피식하게 된다.


웃기다고 하니까 <간장 두 종지>가 생각난다. 나의 웃음벨. <간장 두 종지>를 읽고 대단한 명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옹졸한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써서 일간지의 지면에 실을 수 있다니. 끔찍한 것들이 왜 이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했다.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있다!



피식피식 웃으면서. 자신을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 그것은 참 이상하지. 참 이상하다. 그래도 제로콜라는 맛있다. 맛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




브런치 독자들께


안녕하세요, 브런치를 처음 시작한 이이주입니다. 브런치에 적응하는 동안만 이렇게 글쓴이의 말을 남길까 합니다.


천천히, 오래 쓰고 싶습니다. 일기와 에세이 사이에 있는 것을 주로 씁니다.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와 한국 현대소설의 서평도 올릴 것 같아요. 소설을 쓰고 싶어서, 엽편도 가끔 올리겠습니다.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건강하시고, 평안하소서.


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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