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곰신이라니!!!

스물한살

by 도무지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MjA0MDhfNzEg%2FMDAxNjQ5MzU3ODkyODcy.xWOp8rHbtjKkL6rOEHXYMMeaDMlMAghEwZUM5VzS2Nwg.K31JuEMlIMIx4Bsdo9PVDfOnZVdZJN8pGQ_XBk0uJD0g.PNG.kristin1109%2F075d3a21-200e-40fc-b6a9-c27ed79d1e3e2.png&type=sc960_832

몽골 선교 활동을 통해 만남을 갖기 시작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사귄지 3-4개월이 되었을 때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그는 나와 떨어지기 싫다며 군입대를 늦게 하겠다고 하였지만,

나는 '군대는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라는 알 수 없는 말 때문에 군입대를 재촉하였다.



21살, 연애를 시작한지 3-4개월.

두 가지만 언급해도 얼마나 설렘 가득한 시절일지 모두 다 알 것이다.

20대 초반에만 할 수 있는 연애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이제 막 100일을 앞두고 간질간질한 이야기들을 한창 나눌 때이지 않던가.

그런 시기에 남자친구를 군대로 보냈으니 내 마음은 이별한 것처럼 찢어지게 아팠다.


나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하루하루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보냈다.

학교에 가서도 멍- 하니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훈련소에 보내는 인터넷 편지만이 내가 유일하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하루에 몇 통의 편지를 썼는지 모르겠다.

시시때때로 인터넷을 켜고 편지를 작성했다.

내용은 사실 별 거 없었다.

힘들지는 않느냐, 나는 밥 잘 먹고 있다, 훈련은 어떠냐, 훈련소에서 동기들은 좋은 사람 만났냐, 나는 무얼 했다 등 영양가 없는 말들을 전했다.


결국 나는 그가 있던 생활관에서 가장 편지를 많이 쓴 사람이었다.

편지를 전달할 때 그의 이름이 가장 많이 불렸고, 그의 편지가 가장 두둑했다고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것들이 그에게 힘이 되었고 어깨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렇게 힘든 기간을 겪었던 나와는 달리, 그는 매일 바삐 흘러가는 훈련들 속에서 정신없었다고 한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나와 동일했다.

가슴 한켠이 뚫린 듯한 기분 말이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잘 때 내가 준 펜의 후레시를 켜고 내게 편지를 썼다.

나중에 훈련소 수료식 때에는 노트 한 권을 편지로 꽉 채워서 주었으니, 틈 날 때마다 편지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몰아서 오는 편지를 받기 위해 매일 우체통을 확인했다.

그때 생긴 버릇 때문에 나는 아직도 외출 후에 집에 돌아오면 우체통부터 확인한다.

그건 아무리 이사를 해도 상관없었다.

어떤 집이든 꼭 우체통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아직까지도 편지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혹여나 우편물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떠한 생각을 하기 이전에 자동으로 시선이 먼저 향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주말에는 갑자기 공중전화로 전화가 왔다.

1541 콜렉트콜이라면서.

'응? 지금 같은 시대에 무슨 콜렉트콜이야?'라는 의문이 머리에 스쳐가기도 전에 그가 외쳤다.

"무지야 나야! 끊지 마!"


한 사람당 1분만 할 수 있는 통화를 그는 가족이 아닌 내게 건 것이었다.

역시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약 1분간 통화를 했던 장소는 버스 안이었다.

날이 굉장히 맑았던 그날, 나는 우측 3번째 좌석에 앉아,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안전하게 잘 있어서 다행이라며.

전화해 줘서 고맙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드라마를 찍네 아주~' 싶지만, 청춘 중의 청춘, 순수하디 순수한 날들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곰신이라는 이름 하에, 약 2년 뒤에 꽃신을 반드시 신고야 말겠다며 기나긴 기다림을 시작했다.


이전 21화내가 잊지 못한 건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