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쨍쨍한 햇볕이 나를 덮치면 내 몸의 모든 땀구멍이 해와 눈을 맞춘다.
해가 땀구멍을 혼내기라도 하는지, 땀구멍에서는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눈물을 주르륵 흘려보낸다.
가끔 스포트라이트로 강하게 내리쬘 때면 폭포의 물줄기처럼 쏴아- 내릴 때도 있다.
한껏 열린 땀구멍을 틀어막기 위해 모든 방도를 찾아보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선풍기와 마주 보는 것이다.
뻘뻘 흘린 땀이 선풍기 바람에 날려 한 방울도 남김없이 사라졌을 때 왠지 되갚아 혼내준 거 같아서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며 더위와 사투를 벌이다 어느 순간 으슬으슬해지면 더위를 이겼다며 승리의 쾌감까지 느낀다.
빨리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는 수박도 빠질 수 없다.
수박씨를 퉤- 뱉어가며 빨간색이 사라질 때까지 야금야금 먹는 그 순간은 더위라는 지옥에서 끌어올린 지상낙원이다.
온갖 최첨단 물품으로 도배된 지금 선풍기보다 에어컨을, 수박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쥔 나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여름은 선풍기에 수박만 한 게 없다.
큰 키, O형, 여성.
모기는 위 세 가지 조건을 사랑한단다.
그런데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얼마나 있던가.
나는 175cm의 소유자로 누구보다 뛰어나게 모기의 조건에 부합했다.
그래서일까, 배가 빵- 터져 죽는 거 아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기는 나를 물어뜯는다.
쪽쪽- 소리와 함께 부어오르는 피부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선생님은 나를 보고 말했다.
“무지야, 혹시 수두 걸렸니? 부모님도 아셔?”
“ㅅ..선생..님.. 저 이거 모기 물린 거예요…”
온몸을 뒤덮은 빨간 수포에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싶으면서도 창피함에 고기를 들지 못하던 나.
윙-
딸깍.
‘이 새끼 잡히면 죽었어‘
이번 여름에도 데자뷰처럼 이 상황을 반복해야겠지.
잠을 자다 윙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기어코 불을 켜고 내 눈의 불도 켜고 널 죽이겠단 다짐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