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친다는 말을 요즘 그 어떤 때보다 많이 쓰고 있다.
이 표현만큼 요즘 내 심정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짜친다는 말은 어떤 주어에도 마법처럼 착 달라붙는데 가령 이런 거다.
인생이 짜친다. 사는게 짜치네. 일이 왜 이렇게 짜치냐.
마음상태를 100%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까.
사실할 수만 있다면 평일 낮 테헤란로 한복판에서 인생이 이렇게 쪼들리는 거였냐고 크게 소리치고 싶다.
짜치다;
수준이 모다자거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성과물 등이 예쁘지 않거나 3류라고 생각되는 경우, 유치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등에 쓰이는 경상도 사투리
짧디 짧은 글에 짜친다는 단어를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내가 요즘 왜 이렇게 삐뚤어졌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의 한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며 밑줄까지 쳤던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20대 때 35살 이후의 인생을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35살까지 일하고 그다음엔 ‘그 후에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인 줄로만 알았다. - 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저
생각해 보면 나도 20대 때 35살 이후의 삶은 딱히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평소 MBTI 계획형 하고는 거리가 먼 성향도 한몫했겠지만
중년 이후의 삶을 상상할 기회가 마땅치 않기도 했다.
막연히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아가면서 늙어가겠지 했다.
사랑에 빠지거나, 아니면 일에 미쳐있거나 하면서.
적어도 사랑만 하거나 일만 하는 삶은 내게는 그나마 덜 짜쳐보였던 모양이다.
드라마에서, 혹은 뉴스에서 30대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걸 조금만 더 일찍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시야가 넓어지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많아진다는 것을, 그래서 스스로가 더 부족해 보이고 미숙하고
때로는 영화의 엑스트라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누군가 친절히 알려줬다면 지금보다는 덜 공허했을까.
커리어도, 모은 돈도 애매한 나이.
회사에선 선후배에게 아래위로 치이고 내가 어른이 되는 만큼 부모님은 점점 애가 되어간다.
일만 하고 돈만 벌자니 AI에게 금방이라도 대체될 것 같아 뭐든 억지로 배우게 되고
남들처럼 결혼을 하기에도, 그렇다고 평생 혼자 사는 것도 왠지 두렵다.
노화를 막겠다고 꼴에 선크림은 열심히 바르지만 막상 노후는 대비되지 않을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집을 꼭 사야 하나? 이 연차에는 이직을 한 번쯤은 해야겠지? 끊이지 않는 잡생각들.
그렇게 스스로가 파놓은 땅굴로 한 발을 내딛기 전
문득 삶의 여러 조각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특출난 커리어는 없을 지언정,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다정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어려움을 극복했던 순간들.
사는 게 짜친다고 느껴질 때,
나는 앞으로 내가 갖지 못한 것이 아닌 소유한 것들을 생각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