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증 투병일지

by 살랑


그냥 그런 토요일인 줄 알았다. 적지 않은 사노비 경력으로 아침 9시가 되기 전 눈이 떠졌고, 릴스를 보며 뒹굴거리다 잠깐 회사일로 노트북을 켜서 일을 봤다. 그러다 눈이 무거워 잠시 눈을 붙였고 눈을 뜬 순간 말 그대로 눈이 돌았다.


지금도 눈알이 빙글빙글 돌았다는 표현 말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어지럼의 유형이라 잠시 멍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체한 줄 알았다. 갑자기 속이 메슥거려 정신없이 3번을 토했으니까. 저녁이 되어도 어지러움이 멈추지 않았을 때 깨달았다. 나 잣 됐구나. 내 소중한 주말, 이렇게 녹겠구나 하고.


지체 없이 택시 호출 앱을 불러 혼자 병원 응급실로 갔다. 평소 같으면 좀 참았을 것 같은데 뭔가 느낌이 쎄했다. 대기 시간이 길 줄 알았는데 지체 없이 병상을 받았고 손등에는 낙상 주의 환자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여졌다. 수액을 맞고 뇌 CT를 찍고 한 시간 대기한 응급실에서는 이석증이 의심된다며 내일 당장 외래를 오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찾아본 이석증의 발병 원인은 노화, 피로, 스트레스, 머리 외상 후 충격 등 너무 다양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트레스가 맞았다.


업무량이 급격히 많아졌던 것은 회사에서 몇몇 직원들을 해고한 작년 12월부터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고, 회사가 있는 사람까지 내보낸 상황에서 일 많다고 어필을 하느니 버티다 힘들면 떠날 준비를 하자 싶었다. 사실, 일의 양도 많았지만 부담도 상당했다. 클라이언트는 계약조건을 호떡 뒤집듯 쉽게 바꿔댔고 그들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갑질도 상당했다. 피가 말랐다. 계약이 빠그라진다고 해서 나 같은 한낱 대리에게 책임을 떠넘길 사람은 없겠지만 계약은 담당자인 나에게 자존심이었다. 신규 계약건이 아닌 기존 업무도 상당해서 머리와 몸 모두 쉴 틈이 없었다.


다행히 이석증은 '어지럼증의 감기' 정도로 불리는 만큼 큰 병이 아닌 지라, 병원 진료를 받으며 점차 회복되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내 몸은 회복돼도 이렇게 정신을 갈아가며 일을 하는 것이 맞는 건지. 이러다 또 이석증이 예고 없이 재발하는 것은 아닐지.


나는 녹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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