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39

by 살랑

20대 중반 무작정 가출을 감행한 적이 있다. 엄마와 매일 불같이 싸우던 시절이었고 충동적으로 옷가지 몇 개만 챙겨 집을 나왔더랬다. 집으로 돌아갔던 건 그로부터 3개월 후. 90일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머물렀던 곳은 바로 역삼동이었다.


당시 한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평일 저녁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는데 문제는 주말이었다. 주말의 테헤란로는 항상 적막하고 사람이 없어서 늘 외로움에 사무쳤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내 인생의 암흑기여서 아마 더 그랬을 것이다. 쨌든 그 기억 때문에 이후로는 역삼동 근처는 얼씬도 안 했다. 테헤란로 자체를 피했다. 지붕이 낮은 곳을 좋아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 가면서.


새로운 회사에 둥지를 튼 지는 일 년이 조금 넘어간다. 디데이 어플을 보니 정확히 439일이 되었다. 우습게도 회사는 역삼동에 있다. 때문에 그렇게 싫어했던 역삼동을 일주일에 다섯 번은 간다. 처음에는 괴로웠다. 익숙한 거리에서 내 불안정하고, 다소 위태로웠고 무엇보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던 내 20대가 자주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덜 드는 것 같다. 벚꽃이 만발한 4월의 역삼동 성당, 퇴근하고 자주 가는 네일숍 사장님의 환대, 점심시간 팀원들과 맛집을 가기 위해 서두르던 추억. 이제는 그런 생각들이 더 많이 난다.


추억은 기억을 이렇게 쉽게 이겨버리는구나 생각하며, 이제 더 이상 나는 괴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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