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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n Jul 02. 2019

나는 호주에 살기로 결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호주로 떠난 지 약 3개월.

우려와는 다르게 모든 것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영어를 잘 못해서 걱정스럽기만 했던 아르바이트도 구했고, 학교도 다니기 시작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어학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콜럼비아에서 온 비비아나와 절친이 되었다. 종종 그녀의 콜롬비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게 되었는데, 한국의 문화와는 정말 달랐다. 학교가 끝나면 바에 가서 맥주를 시켜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고, 흥이 많아 어디에서나 춤이 빠지지 않았다. 원래 술을 잘 마시지 않았을뿐더러, 춤과 노래에 소질이 없던 나는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어느 날 하루는 한 친구의 집에서 열리는 홈 파티에 초대를 받았는데 멕시코, 콜롬비아,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파티를 하는 것이었다.

각자 마실 음료나 술을 챙겨 오면 되는 것이고 모르는 사람끼리도 금방 서로 대화를 하며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처음 본 사이임에도 굉장히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며 금세 편안한 분위기가 되었다. 전혀 다른 나라에서 왔기에 서로의 문화나 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이 이유였을까.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그냥 음료수 한 잔을 들고 소파에 걸터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었는데, 그렇게 있다 보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다가와 이름을 묻고 얘기를 나누고 친구가 되곤 했다. 파티에 친구를 데려가는 것은 자유인데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맥도 늘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 흥에 오른 친구들끼리 스피커 볼륨을 올리고 한편에서 춤을 추고, 나는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파티에 참여하는 건 몇 번에 그쳤는데, 아마 내 생활패턴과 맞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학교에서 알게 된 친구들, 혹은 일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을 모아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내가 미리 알아본 여행지에 같이 갈 친구들을 모집한다. 비용은 들지 않지만 각자 자신이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와야 한다. 그렇게 싸온 음식들을 싸들고 우리는 시드니 근교로 여행을 다녔다.

가끔은 하이킹을 가서 높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햄버거를 먹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긴 기차여행에 지루해져 여행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음식들을 다 먹어버리기도 했다.




3개월의 짧고도 알찬 어학연수 기간이 끝나고 나는 생각했다.



호주에서 살아야겠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돌아간 이유는 간단했다. 부모님을 설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주위에는 외국으로 혼자 나가서 살고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간단히 전화로만 말씀드려 설득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왜 시드니에 살아야 하는지, 내가 왜 이 곳을 좋아하는지 직접 말씀드려야 했다. 매일매일이 너무 행복한, 내가 정말 살아있는 것 같은 이 기분. 누가 들으면 정말 말도 안 되고 기가 막히다고 할만한 이 간단한 이유로 나는 시드니에 살겠다고 결심했다.


부모님은 적잖이 당황하신 것이 분명했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외국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도 당황하셨겠지만 지금은 더 했을 것이다. 1년 동안 많이 경험하고 돌아올게 하고 약속한 딸이 시드니에 살겠다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도 모르고, 준비한 적도 없으면서도 꽤나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는 나를 보고 부모님은 어떤 마음으로 승낙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첫 번째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비자였다. 호주에서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워킹홀리데이는 1년 만에 끝나기 때문에 비자를 연장해야만 했다.

일단 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이 미치자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여기까지 와서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는 없기에 내 힘으로 학비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호주로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은 사기를 당했던 집에서 이사하는 것이었다.

새로 이사하게 된 집의 위치는 달링하버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곳이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달링하버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방에는 총 4명이 사는 셰어하우스였고 방은 총 3개, 우리 방을 제외한 나머지 두방은 커플들이 사용했다.


집을 구한 뒤에는 일을 하나 더 구했다.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라멘집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 중 하나였는데, 그렇게 두 개의 일을 시작하여 오전에는 라멘집 오후에는 카페 이렇게 풀타임으로 7일 내내 일을 했다. 오전 8시 반에 라멘집에 출근해 4시 반까지 일을 하고 오후 5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카페에서 일하는 생활을 약 3개월간 했다.



어떤 정신으로 버텼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했던 것 같다. 학비를 내 힘으로 마련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나는 일 하고 집에 와서 쓰러져 자는 과정만 반복했다.






호주에 살겠다고 결심한 이후, 나의 삶은 다시 한번 변했다.

친구들과 즐기며 여유롭게 생활하던 시간을 뒤로한 채 매일 일에 매진했다. 쉽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은 어느덧 끝이 보이고, 워킹 홀리 데이 비자가 끝날 즈음에 나는 시드니의 한 비즈니스 컬리지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찌어찌 학교에 입학하였지만 학교에 다니는 것은 전혀 순탄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을 잘 알아듣기 힘들었고 에세이 작성을 해본 적도 없었기에 남들보다 배의 시간이 걸렸다. 그 와중에 생활비와 남은 학비를 내기 위해 일도 해야 했다. 학교 끝나고 저녁에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게 되고, 그 시간에 숙제를 하려니 졸음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생각했던 것처럼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막상 현실이 되니 조금은 두려워지기도 했다.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회사에 가고 퇴근하고 친구를 만나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는 생활은 어느덧 꿈같이 멀게 느껴졌다.

내 생활은 그저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일을 하러 가고 퇴근하면 밤 11시, 집에 오면 샤워하고 숙제를 하다가 잠이 드는 것의 반복일 뿐이었다.



내가 선택한 길임에도 가끔 힘들고 서러운 생각이 들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그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자니 걱정을 할게 뻔하고, 그렇다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털어놓자니 내 진심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일이 너무 힘든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반짝이는 달링하버를 보며 서러운 눈물을 훔치다가 집에 돌아가는 게 내 스트레스를 푸는 일의 전부였다.


주변에 고민을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것도 꽤 큰 문제였다.

그렇게 항상 내 옆에 있을 것 같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비자가 끝나고 본인의 나라로 돌아갔다. 워킹홀리데이가 끝날 즈음의 시기가 되었을 때 내 주변에 있던 소중했던 친구들은 전부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어쩌다 한번 있는 주말도 이제는 시시하게 느껴졌다. 같이 여행을 갈 친구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외롭고 허무한 것인지를 몰랐다. 매일매일 서로를 의지하던 소중한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기쁨도 같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여기에 와서야 처음 느끼게 되었다.


그즈음 부모님께서는 말하셨다.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한국에 돌아오는 게 어떠니? 친구도 없이 가족도 없이 먼 곳에서 고생하는 거 너무 힘들지 않니?"


나는 내가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대답은 달랐다.

"혼자인 것도 너무 힘들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벅차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볼게요."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버티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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