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편 : 내 안의 '네오'를 깨우는 믿음의 연금술

영화 <매트릭스> X 소설 <연금술사>

by 제이

‘꿈’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아마 제가 추측해 보건대 마냥 긍정적인 느낌이 드시지는 않을 겁니다. 2010년대의 ‘자기계발 붐’과 맥을 같이 하는, ‘꿈’에 대한 강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압박감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허무감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회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때의 시대적 분위기를 통해 날아오른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대부분은 꿈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기고 끝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떠한 조언이 들려올 때, 자기 자신에게 맞게 적용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예를 들면 이상적인 사람에게는 땅에 발을 붙여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현실적인 사람에게는 더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그런데 2010년대의 꿈과 자기계발에 대한 강조는, 모든 사람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꿈을 크게 가지라”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꿈이 없다”고 한 유재석 씨와 같이, 꿈을 크게 갖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최적의 라이프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당시의 시대 흐름은 그걸 인식하지 못했어요.


꿈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것

그러한 꿈의 지나친 강조에서 오는 그림자, 또는 부작용이 있지만, 책 <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산티아고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맛나게 해주는 건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뤄지길 바라는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또는 그것이 이뤄지리라고 전혀 믿지 않는다면, 삶은 내내 지루하고 팍팍할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러한 시기를 지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인생 ‘살맛’이 나지 않았었습니다. 이렇듯 꿈은 너무 강조해도 문제고, 너무 잊어버려도 문제인 것입니다.


한편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화려한 매트릭스와 달리 모든 것이 낡고 비루한 느부갓네살 호의 현실 속에서, 모피어스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요. 영화 속에서 나오는 말들을 통해 추리하면, 그는 굉장히 원대한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그는 언젠가 인류가 모두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와 AI의 지배를 벗어나, 진짜 지구라는 세계에서 서로를 돕고 사랑하며 사는 꿈을 꾸었을 겁니다. 네오라는 구원자로 표상되는 그 희망은, 진실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갈망이었지요.


생각해 보면 모피어스는 참으로 이상주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AI가 선사한 가상현실 속에서 헤매며 사육되고 있는 수십억의 사람들을, 오직 단 한 사람만이 구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믿음을 그는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인생을 ‘살맛나게’ 살아갔을 것입니다. 오직 그 희망 하나로요. 그랬기에 네오를 만나고서도 네오가 ‘그’라고 완전히 단정지을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 단언과 신념은 결국 네오를 진짜 구원자로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보곤 합니다.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둘은 원자의 전체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작아서, 원자는 거의 텅텅 비어있는 거나 다름없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원자로 되어 있고, 우리 자신이나 책상, 컵, 강아지, 그 밖의 모든 것이 텅 비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모두 하는 말이니 흠결 없는 과학지식이라고 믿을 수밖에요.


그렇담 우리가 책상을 통과하지 않고 만질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과학자들은 전자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서로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전자기력 때문이라고도 말하죠. 그렇지만 원자의 99.99% 이상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렇게 단단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요. 그건 아마도 ‘믿음’ 때문이 아닐까, 라는 조금의 비약에 가까운 생각도 해봤습니다. 책상이 그 자리에 존재할 거라는 사람들의 믿음이, 그 자리에 책상이 있다고 ‘인식’하게 한 거라는 생각입니다. 세상은 완전히 텅 비어있지만, 우리가 책상을 보고 만지며 나무 냄새를 맡는 건 책상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인 믿음 때문이 아닐까……. 말씀드렸듯이 비약에 가까운 생각이지만, 나름 흥미롭지 않은가요.


그래서, 때론 우리의 믿음이 진실에 선행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랩에 나와서 유명해진 성경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도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모피어스는 인류의 구원자 네오를 찾은 것이 아닙니다. 만들었지요. 흔들림 없는 한결같은 믿음으로, 그를 구원자로 만든 것입니다. <연금술사>에 나온 말처럼,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건, 분명 인생을 살맛나게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만은 아닙니다. 꿈이 실현되리라는 믿음은, 현실을 재구성하고, 마침내 꿈이 현실이 되게 만듭니다.


날 기다리는 것에 대한 믿음

<매트릭스>에 구원자의 존재를 판별하는 예언자 오라클이 나오듯이, <연금술사>에도 꿈을 해석하고 손금을 보는 집시 노파가 나옵니다. 두 사람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읽어낼 수 없는 것을 읽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이 무언가를 읽고 그걸 예언의 형태로 발설할 때,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 예언이 미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가?


<매트릭스>에서, 오라클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오라클이 “꽃병은 걱정 마렴.”이라고 말하자마자 네오는 꽃병을 깨뜨리죠. 그러자 오라클은 말합니다. “나중에 네 머리를 정말 복잡하게 만들 질문은 이거지. 내가 아무 말도 안 했어도 네가 꽃병을 깨뜨렸을까?”


<연금술사>에서는 집시 노파가 양치기 산티아고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산티아고는 꿈속에서 피라미드에 갔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만일 당신이 이곳에 오게 된다면 당신은 숨겨진 보물을 찾게 될 거예요.”라고 말하고 그것이 있는 곳을 아이가 알려주려 할 때 잠에서 깨지요. 집시 노파는 그것이 말 그대로 산티아고가 피라미드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보물을 찾게 될 꿈이라고 말해줍니다.


너무나 간단한 해석에 화를 내려는 산티아고에게, 집시 노파는 그것이 가장 단순한 해석이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해석이라고 설명하지요. 그럼에도 모험을 떠나길 망설이는 산티아고에게, 살렘의 왕 멜키세덱이 나타나 꿈에 대해 똑같은 풀이를 해줍니다. 결국 산티아고는 꿈을 위해 가진 양을 다 팔아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떠납니다.


만약 산티아고는 집시 여인과 살렘의 왕의 해석이 없었더라도 이집트로 떠났을까요? 미리나름을 좀 하자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산티아고는 그야말로 진짜 보물을 손에 쥐게 되는데요. 물론 산티아고와 독자가 예상했던 방식은 아닙니다. 어쨌든 그들의 해석이 없었다면, 산티아고는 용기를 내어 모험을 떠날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결국 문제는 다시 ‘믿음’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보물이든, 소망의 실현이든, 아니면 네오의 경우처럼 꽃병을 깨뜨리는 것이든 간에, 어떤 것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인식과 믿음은 그 결과에 필연코 영향을 주게 됩니다.


Fate와 Destiny

운명을 지칭하는 영어의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숙명Fate입니다. 외부의 힘으로 인해 인간이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정해진 결말이지요. 다른 하나는 운명Destiny입니다. 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성취할 수 있는, 내가 나아갈 목적지를 뜻합니다.


책 <연금술사>와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운명’은 모두 Fate입니다. 역자들이 자연스러운 맥락을 유지하기 위해, ‘숙명’이라는 다소 낯선 단어를 택하지 않고 모두 ‘운명’으로 번역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연금술사>와 <매트릭스>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언급한 운명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연금술사>에서 살렘의 왕 멜키세덱은 산티아고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몫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그런데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사기를 치고 있다네.”라고 말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오라클은 네오가 ‘그’라는 확신을 주지 않습니다. 네가 구원자가 될 운명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반대로 그렇지 않은 듯이 말하지요. 다만 모피어스 또는 네오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하는 상황을 명확히 알려주고, 네오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넌 이딴 운명 같은 건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겠지. 네 인생을 통제하는 건 너 자신이야, 알았니?”라고 말하죠.


비극적인 숙명인 Fate는 인간의 자유의지, 선택, 그리고 믿음과 전혀 반대되는 것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간의 믿음에서 비롯된 자유의지 한 자락이나, 선택 하나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변화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역사는 어떤 사람, 또는 사람들의 선택으로 인해 기존의 흐름인 Fate가 바뀌는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Fate가 우리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연금술사>와 <매트릭스>, 두 이야기는 모두 Fate를 물리치는 데에서 나아가, 각자 성취해야 할 최선의 모습인 Destiny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는 결국 연금술사가 되는 법을 터득하지요.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구원자가 됩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우리의 최종적인 모습이 무엇일지 우리는 과연 잘 알고 있을까요. 만약 알고 있다면, 그리고 온전히 믿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집니다.


간절한 소망을 실현시키는 우주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책 <연금술사>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가장 유명한 구절 중의 하나이기도 하죠.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러니까, 대충 원하면 안 된다는 걸까요? 반만 원해도 안 되고요? 되면 좋겠는데 안 되면 말고, 그런 마음을 버리라는 걸까요?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거기에도 어떠한 공간이나 부피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온 마음을 다해’라는 구절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죠. 마음이 쪼개진다는 표현을 우리는 종종 봅니다. 다함께 한마음으로, 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죠. 마음의 세계는 참으로 알쏭달쏭한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할 때, 느낌이 좀 다르다는 겁니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갈팡질팡 헤매거나 번뇌로 마음이 혼탁해지지 않아요. 의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저 온 마음을 다해서 무언가를 바라거나 그것을 위해 행동할 때 우리는 그 느낌을 압니다. 때론 그 느낌을 그리워할 때도 있지요. 이것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의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꿈을 위해서, 더 나아가 소명을 위해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자신의 가장 최선의 모습을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나아간다면, 우리에겐 분명 이전과는 다른 결과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런 우리에게 우리만의 트리니티가, 모피어스가, 오라클이 다가와 말을 건넬지도 모르죠. 당신이 오랫동안 그려온 그 꿈으로 인도하기 위해 당신의 곁에 왔다고 말입니다. 꿈은 고집 센 바보만이 꾸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고집 센 바보들만이 이 세상을 바꿔왔습니다. 당신 또한 그중 하나가 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시나요?






영화 <매트릭스>

전세계 영화인들의 성지 IMDB(Internet Movie Database) 사이트에서 뽑은, 최고의 영화 250선 중 16위를 차지하였다. 철학적인 내용을 재미있는 스토리텔링과 감각적인 영상미에 잘 녹여낸 영화이다. AI가 인류를 지배한다는 내용은 개봉 당시에도 충격적이었으나, 오늘날의 현실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어서 지금 보면 더 소름이 끼치는 부분이 있다. 미래가 진짜 이대로 흘러가는 건 아닌가 두려울 정도인 영화. 몇 가지 단점이 있지만, 그마저도 덮어주고 싶은 영화사의 걸작.


소설 <연금술사>

기독교적 사상과 뉴에이지 사상이 적절히 결합된 책이다. 신에 대한 경건함과 자아실현에 대한 열망을 그렸으며, 1억 부가 넘게 팔린 출판계의 살아있는 전설. 80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300주 이상 머물렀다. 저자 파울루 코엘료는 이 책으로 인해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으며, 이후로도 계속해서 인간의 영혼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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