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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은도 May 10. 2022

그 남자의 원초적 축제

뜻 밖에 알게 된 축제의 기원


“은도씨는 왜 이 세상에 축제가 있는지 아세요? 왜 사람들이 추석이나 설날 같은 것을 챙기는지 말이에요.”


지금껏 나눈 대화의 문맥과 전혀 맞지 않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S는 어딘가 모르게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였다.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자신의 취향에 대해 몇십 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안 어딘가 있을 그의 정수, 그것이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기분이다.

소개팅 앱을 하며 3번째로 만난 사람이었다. 두 번째 재력 영감님의 임팩트로, 난 더한층 겁이 없어졌다. 누굴 만나든 지난번 이야기한 재력 영감님 이상의 충격은 내게 없을 거라 자신했기에, 일 보러 나간 길에 가볍게 서울숲에서 만나 이야기해보자.


그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온다고 했고, 벤치에 앉아있는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빨간 피케셔츠에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의 그가 나타났다.

첫인상은 범생이 또는 똑똑하고 왠지 컴퓨터를 잘할 것 같은 느낌…

우리는 볕 좋은 서울 숲을 걷기 시작했고 약간의 스몰 톡을 거쳐 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럽 각지를 여행했고 미국도 여러 도시를 방문한 경험이 있었으며 특히 미디어 쪽 대학을 전공한 후 더 욕심이 생겨 캘리포니아의 대학까지 유학을 갔다 했다.

캘리포니아의 맛집 그곳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배경까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게이, 트랜스, 크로스 드레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편견 없음을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신기한 점은 프리랜서로 일하며 한 번도 직장에 다녀본 적 없는, 말 그대로 자유인의 삶을 유지해 온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일종의 서바이버…. 생존자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자리를 옮긴 수제버거 집에서 그는 나의 이상형에 대해 물었다. 내 이상형을 들은 후 S는 이윽고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비율이 좋은 사람이 좋아요. 그래서 원래 키가 좀 큰사람을 좋아하거든요. 키가 크면 어느 정도 비율이 커버가 되니까. 그런데 은도씨는 키가 크진 않지만 비율이 좋으신데요.”


이렇게 이야기하며 내 몸매를 한번 쓰윽 훑는 그의 눈엔 약간의 광채가 번뜩이는 듯했다.

솔직히 그날 난 약간의 전투복 같은 느낌으로 딱 달라붙는 검은 티셔츠에 뽕브라를 하고 간 참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내 몸을 스캔할지는 예상 못했었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그 칭찬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되려 어깨를 쭉 펴고 ‘오호~ 그렇단 말이지?’ 하고..


“그런데 이게 어쩔 수 없어요. 영상 쪽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비율적인 걸 보게 되더라고요.”


말도 안 돼. 직업이 어떻든 몸매 비율 다 본다. 어쨌든 그는 뒤 이어 남자란 종에 대한 일종의 설명… 아니, 강의를 해 나갔다.


“남자의 성욕이란 말이죠, 일종의 가라앉지 않는 가려움증과 같아요. 몸이 너무 가려운데 그걸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성관계뿐인 거죠.”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표현만 안 할 뿐이지 여자도 똑같이 욕구가 있어요.”


남자들의 여자를 얻기 위한 모든 노골적 구애의 몸부림들이 그저 성욕이 강해서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여자도 욕구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세련되게 표현할 뿐인 걸.


“아, 아무래도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 이런 인류사적인 이야기를 평소에 친구들과 한답니다. 너무 이상하게 보지는 말아 주세요.”

역시 개소리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으면 처음 보는 여자에게 남자의 성욕에 관한 강의를 할 자격이 주어지는 건가?

실내는 답답해. 그곳을 나와 우린 다시 서울 숲을 걸으며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난 여자랑 자는 걸 좋아해요.”


이런 원치 않는 정보를 던지는 게 남자들의 속성인가. 그에 대해서도 그가 강의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 제가 S 씨를 극혐 하거나 하면 어쩌려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건 따지는 게 아니다. 그저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나중에 알고 극혐 하는 것보단 지금 극혐 하는 게 나으니까.”


들어도 잘 모르겠다. 이윽고 나온 대망의 질문.


“은도씨는 왜 이 세상에 축제가 있는지 아세요? 왜 사람들이 추석이나 설날 같은 것을 챙기는지 말이에요.”


“글쎄요. 유교 국가라 전부터 선대에서 해 오던 일을 거스를 수 없이 따르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의 의도와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S의 의도는 이러했다.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일상의 반복적인 일에서 벗어나 색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일상의 무료함을 벗어나기 위해 축제를 여는 것이죠. 남자와 여자가 자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 그래서 지금 이 남자는 나와 축제를 열고 싶은 건가. 속으로 생각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S가 계속 이야기하게 두었다. 사실 그의 앞에선 그다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 난 아직까지도 그의 발자취, 사상, 성욕 등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의 영혼만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집으로 갈 지하철을 기다리며 그는 자신의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는 키도 그만하면 큰 편이고 듬직한 체형이었기에 옷을 벗으며 드러나는 그의 널은 어깨가 주는 자극은 상당했다. 나는 그가 겉옷을 벗는 장면을 일초도 눈을 돌리지 않고 샅샅이 훑었다. S도 그걸 아는 듯했다. 그날 우린 똑같이 서로를 한 번씩 훑은 셈이다.


그 뒤로 우린 별다른 진전 없이 그냥 친구로 남기로 했다. 편하게 말을 트고 난 후, S의 질문에서 난 엉뚱하게 그의 영혼 한 자락을 느꼈다.


“너 생년월일시가 뭐야?”


“나? 그건 왜 물어보는데?”


“아니 내가 사주를 좀 보려고 내가 본 너와 사주가 일치하는지.”


아차, 잊고 있었다. 그는 얼핏 지나가는 이야기로 부모님이 사주를 보고 와서 자신의 운에 빨간색이 좋다고 하여 꼭 빨간색 의복을 착용한다고 했던 이야기. 그렇게 우린 서로의 사주에 대한 정보도 교환했다. 그는 사주에 불이 없다고 했다. 반면 난 사주를 볼 때마다 활활 타는 태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네 사주에 불이 많아서 네가 내게 나쁘지 않게 보였구나.”


참 재미있다.


“내가 앞으로 너에게 외로울 때 자자고 할 수도 있어. 그런데 난 싫다고 하면 절대 안 건드리니까 걱정하지 마.”


난 완곡히 거절하며 생각했다.


'내 따뜻한 화기(火氣)를 나누어 주긴 싫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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