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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은도 Apr 18. 2022

소개팅 앱 영감님

영감님과 나,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조합의 만남


앞서 말했지만, 소개팅 앱으로 만난 첫 남자에게 까였다.

이런 찝찝한 상실감을 온전히 느끼며 버텨낼 수밖에 없던 20대가 있었지만, 지금 난 30대 말기이고 앱만 켜면 다시 수많은 얼굴들에 라이크를 누를 수 있다.

다시는 소개팅 앱을 하지 않겠다 결심했지만, 갑작스러운 까임에 대한 완충제가 충분히 않았기에.

앱을 다시 켜는 내 손에 망설임은 없다.

그래도 한번 사람을 만나봐서 인지 겁이 많이 없어져서, 그래 이젠 닥치는 대로 마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자.


몇몇의 사람과 대화를 해 보았다. 이번엔 프로필 설명에 [ No FWB, No ONS]라고 첫 줄에 달아 놓았다. 좀 진중한 놈이 걸렸으면 싶어.

아무도 쉽사리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내놓지 못하고 서로를 탐색하는 대화들만 오가는 와 중에 의외의 사람에게서 다짜고짜 오늘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래 안 그래도 방금 까여서 정신이 혼미한데 잘 걸렸다. 한번 얼굴이나 보자.


그 사람의 프로필 아이디는 [력]이었다. 사진엔 얼굴은 없고 고급 자동차 사진만 올라와 있었다. 프로필 설명에 의하면 그는 시간과 돈은 많은데 애인이 없고 식사는 자기가 쏘겠다고.

난 항상 궁금했다. 나와는 동선 겹칠 일 없는 돈 많은 사람은 어떻게 생겼고, 어디를 가며 어떤 생각을 할까. 뭔가를 얻어먹거나 할 생각은 없고,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그래서 내 생각에 가장 안전한 장소, 보라매 공원에 서서, 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약간 부내 나고 허세에 물든, 생김새는 민머리에 풍채가 두둑한 스타일이 아닐까 나름 추측을 하며 서 있던 내게 나타난 실루엣은 예상외로 호리 하고 또 예상과 달리 민머리는 아니었지만 숱이 많이 없는 머리였다.


하.... 할아버지?


그렇다. 그의 생김새는 내게서 할아버지란 호칭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그저 평범한 나이 많은 사람.

가슴속 큰 당황을 진정시키며 인사를 나눴다. 호기심은 기어코 당황을 이겨냈고,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보라매가 아주 많이 오랜만이라는 그의 앞에 안내자의 심정으로 앞장섰다.

그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공원은 없을 거라며 자신이 아주 오래전 와봤던 보라매 공원을 대조하며 격세지감 같은 걸 느끼는 듯했다.

예전에 한참 바다이야기 같은 성인 오락실이 유행했을 때 마침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품권이 오락실에서 통용되는 바람에 그때 큰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빌딩을 사서 주로 임대업으로 재산을 불렸다는 그는 일종의 ‘부 축적의 역사’을 읊어내기 시작했다. 지금 정치권과도 친분이 있어 이차 저차 하여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운 좋게도 지금은 서울 노른자위 땅에 건물이 두채 있으며 그중 한 건물 제일 위층에 살고 있다 했다.


전날 비가 내렸기에 건조한 벤치를 겨우 찾아 앉아서 약간 가쁜 숨을 돌린 그는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할 것을 제안했고, 그 주위엔 운동하는 사람이 꽤 되었는데 난 속절없는 수치심에 그 자릴 뜨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나 그 자리에서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는 우리는 동등한 인간이란 생각에 난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프로필엔 마흔둘이라고 적어 놨지만 사실 사십 여덟이야.”


내 머릿속에 어쩐 지라는 단어가 빠르게 스쳐갔다.


“내가 몇 살처럼 보이나?”


“아 네... 말씀하신 나이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사실 내가 실제 나이는 육십 여덟이야.”


“!!!!”


이건 뭘까? 이중 충격 상쇄 요법인가?

그래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할아버지인 건 인정하겠지만 어쨌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다.


“그런데 내가 사실 좀 특별해 병원에서 검진받아보니까 모든 게 다 건강하고 특히 호르몬이 왕성하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여자만 생기면 난 매일 밤 그걸 할 수 있어..”


아...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그는 이혼하고 자식들은 모두 엄마에게 가 있어 매일 혼자 밥 먹고 혼자인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힘겹다고, 돈으로 사는 여자들엔 관심이 없다 했다.

여자를 알아봐 주겠다는 사람들에게 제대로만 찾아오면 오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지만 여자를 알아봐 주겠다는 사람들 또한 나이가 많기에 자기가 원하는 30대 여자를 찾아오질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이대와 수준에 맞는 점잖고 고우신 여성분들은 관심 없으세요.”


나의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자신의 말년을 함께 보내주고 모든 부를 물려줄 여자를 찾는다고. 하지만 자신이 죽고 없을 경우 그 여자 혼자 남겨질 것이 마음 아파 자식을 하나 꼭 놓고 싶다고. 여자 나이 사십이 되면 가임률이 급격이 떨어지는 것을 아냐며 나 또한 아주 중요한 시기에 있다는 것을 상기키켰고 빨리 결혼해야 하지 않겠냐고도 물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막바지를 향해 갔고 나는 또렷하게 밝혔다.


“아무래도 저는 찾으시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날 보며,


“나도 자네같이 마른 타입은 별로야. 나는...”


그는 주변을 한동안 둘러보더니,


“어, 그래 저기. 저 여자처럼 작고 통통한 스타일을 좋아해.”


하며 그 여자를 눈으로 뚫어져라 쫒았다.


순간 나의 반응은 나 스스로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의 무례함과 노골적인 욕구 표현에 정색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그는 자신의 어깨를 치며 웃는 사람을 처음 본량 신기해하며 약간 즐거운 기분이 들었는지 함께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는 내게 실명과 자신의 사생활용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주변 친구들 중 자신이 말한 스타일이 있다면 소개해줄 것을 바랐고 난 절대 없다고 웃으며 안녕을 고했다.


집에 돌아가며 내가 얻은 것을 점검해 보았다.

난 항상 서울 번화가에 빌딩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는데 이젠 그중 하나의 얼굴을 알게 되었다는 것과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원하는 것이 나와 다르지 않음에서 오는 씁쓸함이었다.

나도 나이 먹고서까지 동반자를 찾지 못하고 그처럼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면?

나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물론 나는 내 나이대 사람을 찾겠지만.

아니다. 아닐 수 있다. 나이 먹어서도 젊은 사람이 좋을 수도 있다.

Never say never. 단정할 수 없다.


막연한 두려움을 선선한 저녁 바람에 날려 보내며 돌아와 다시 날 깐 남자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내게 4가지의 서운한 점을 이야기했다.

그것을 들으며 내겐 즉시 반발심이 들었지만 그가 내 의견을 존중해 왔던 걸 알기에 나 또한 그를 존중해야 하고, 사실 우리가 잘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퍽 풀기 어려운 매듭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쉽다. 우리 둘 사이에 얼마간 서로에 대해 애틋함이 있음을 느꼈기에. 그래서 내가 그에게 준 상처를 인정해야 하고, 그가 원하는 우리의 거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좀 덜 논리 정연한 떼쟁이였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떼를 써 볼 텐데. 그의 명쾌함이 싫다.

언젠가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내가 그를 잊기 위해 앱을 켜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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