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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은도 Apr 08. 2022

휴지심 남자

자신의 물건에 유달리 자신감을 보인 그

[전 글과 이어집니다.]


“혹시 기분 나빠?”   

  

도리도리.     


“혹시 싫었어.”     


도리도리.     


A는 키스가 끝나자마자 이런 요상한 질문을 했다. 도리도리 내젓는 내 고개를 보며 안심한 듯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긴 키스를 나눴다. 하지만 그의 흥분도가 더 올라가며 여기서 더 했다간 다음 단계로 가게 될 것 같아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이제 가야겠어요.”     


“그래.”     


그의 사업장을 나서자 들어갈 때만큼이나 밝은 볕이 여전히 내리쬐고 있었다. 약간은 묘해진 분위기 속에서 날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었다.    

  

A와는 이다음부터 많은 일이 있었는데 당장은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A에게 까였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반드시 그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아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쨌든 전에 오픈 카톡에서 만난 클래식을 좋아하는 Z와의 연락이 끊기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언급했었다. 그 계기는 Z에게 A에 관한 고민 상담을 했는데, Z에게서 의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나랑 사귀거나 한 건 아니지만 대신 사귀는 것처럼 연락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우고 있는 거로 생각했어.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서 나랑 연락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누나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기면 나도 새로운 대화 상대를 찾아야 하고.”     


난 Z와는 좋은 누나, 동생이라고만 여겼기에, 꽤 놀랐다. 하지만 이윽고 수긍했다. 그럴 수 있다. Z 말대로 내가 누군가와 만나려 하는데 Z와 별 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주 연락하거나 하는 건 좀 문제가 생길 수도. 그렇게 우린 점차 멀어졌다.      


그리하여 오늘의 주제는 제목처럼 휴지심 남자. 그쪽으로 이야기를 틀어 보려 한다.


휴지심 남자는 소개팅 앱을 하며 처음 통화해본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다 하게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한 번의 통화로 인연이 끝나긴 했지만, 그는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육식남. 이런 압축적이고 평면적 단어 하나로 사람을 단정하는 것은 뭔가 불합리적이지만 가장 근접한 단어라 생각한다. 그는 육식남이다. 

그의 말투는 급할 것이 하나 없는, 심지어 거드름을 피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느긋했다. 그 속도만큼의 여유와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그러했다.     

그는 스스로 칭하기에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고, 그에 따라 대학도 좋은 곳을 나왔으며, 명품을 좋아한다고 했다. 물론 내겐 명품과 자신감 관의 상관관계에 대해 일말의 지식도 없지만, 그에게는 뭔가 상관있어 보였기에 말해 둔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킨십과 남녀 간의 관계 맺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음침한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이긴 했으나 한편으론 좀 배알이 뒤틀리기도 했다. 내가 어디 가서 성관계를 즐긴다고 얘기하면 난 과연 어떤 편견 어린 눈빛을 받을 것인가부터 걱정될 것 같은데.  

    

그런데 사실 인간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영혼과 몸이 맺어지는 행위를 즐기지 아니할 이유, 굳이 그런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냥 기본적으로 누구나 그걸 즐기는 게 당연한 것이 될 수는 없을까. 다만 반드시 원하는 상대여야 할 테고.      


내가 왜 처음 전화통화하는 상대에게서 자기가 성관계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어서 하는 이야기다. 그런 정보가 왜 내게 수집되어야 했던 것인가? 생각해 보면 내가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 꽤 많은 남자가 내게 그런 정보를 제공했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는데 그런 정보는 필요 없소이다. 안 물어봤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좋아할 거로 생각해요. 좋아하면 뭐 어쩌라고요.     


아무튼, 그의 솔직함과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재미있어서 피식피식 웃으면서 통화했더니 그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놨다.     


“너 혹시 남자 꺼 큰 거 좋아해?”

     

“내가 왜 그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죠?”     


“어 대답 안 해도 돼. 말 안 해도 넌 큰 거 좋아할 것 같아.”     


아니, 이건 대체 뭘까?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깔깔깔. 

뭐든 난 적당한 것. 중용. 그것이 바로 완벽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굳이 그에게 나의 견해를 관철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혹시 내 것이 얼만한지 궁금해? 궁금하면 휴지심 가져와봐.”  

   

푸 하하하하. 난 목을 젖히며 웃었다. 그의 솔직함과 대범함이 유쾌하기도 했지만, 마치 공작새가 자신의 아름다운 깃을 자랑하듯 자신의 그것을 휴지심에 빗대어 표현하는 그가 너무 웃기기 그지없었다. 궁금하다. 그의 빅 데이터에 이 이야기를 해서 여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전력이 있었기에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것인지. 정녕 이와 같은 이야기에 반응하는 여자들이 있었던 것인지.     

 

아무래도 우리 사이의 멀고 먼 거리감만 확인한 것 같은 한 번의 통화를 끝내고 그에게 다시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그도 며칠 후 나와의 대화창에서 나갔다.    

  

아직도 화장실에서 다 쓴 휴지심을 치울 때마다, 휴지심 남자, 그가 떠오른다.    

  

딱 그만큼, 

딱 휴지심만큼의 존재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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