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그의 이야기를 쓰는 게 쉽지 않다. 소개팅앱으로 처음 만난 남자. 그를 A라 칭한다. 지난 글에서 A에 대해 이야기하며 뭔가가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내 마음이 그랬나 보다. 내 마음과 아직 가까운 이야기라 하기 어렵다.
A에겐 만나고 온 다음날 더 이상 이성으로 만날 생각은 없고 친구로 지내자고 얘기했다.
당시엔 진짜 큰 관심은 없었는데.
그는 한동안 아쉬워하고 고민하더니, 친구로 지낼 것에 콜!! 을 외쳤다. 다만 ○○씨라고 부르던 호칭을 오빠로 바꿔 줄 것을 요구했다.
아주 나중에 A에게 들은 말이지만 친구로 지내자는 말에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느껴서 콜! 한 거란다. 왜 그렇게 되는 건지 난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너도 말 놔.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존댓말은 무슨 존댓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대승적으로 오빠라는 호칭도 말고 그냥 '너'라고 하라고 했어야 하지 않는가? 왜 반말하라면서 오빠란 호칭은 듣고 싶어 하는 걸까. 내가 연하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이해의 범주가 좁은 건가.
이윽고 A가 부업으로 하고 있는 사업장에 놀러 오라고 했다. 구경시켜줄게. 그 말이 그냥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재택으로 방구석에서 운동만 해가지고 건강하게 썩어가고 있던 내게 일어난 재미있는 이벤트 같은 느낌.
그리고 화창한 다음날, 그의 사업장에 놀러 갔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양꼬치 좋아해요."
(참고로 말을 놓으라고 한걸 잊고 있었다)
"내가 또 엄청 잘하는 집 하나 알고 있지."
A의 사업장 근처 양꼬치집에 낮부터 앉아 양고기를 씹으며 정치 이야기를 했다.
"오빠는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도 아니고, 극 자본주의자예요. "
몇 가지 주제에 대한 토론 끝에 그렇게 A의 정치성향에 대해 결론 내렸고 그도 그 결론이 퍽이나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의 사무실은 옮긴 지 얼마 안 됐다는 말처럼 약간 어수선했는데, 그보다도 A자체가 반영된 게 아닐까 지금은 생각한다. 그 사람 자체가 좀 어수선하다는 게 현재의 내 결론이다. 물론 이 결론에 A는 반박할 방법이 없다는 게 가장 통쾌한 지점이고.
그래도 그의 포트폴리오를 구경하고는 꽤 인상 깊어서 이런 구르는 재주가 이 곰에게 있었구나 싶었고 그가 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곰이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재주도 있어서 난 속도 없이 미주알고주알 내 이야기를 홀랑 까뒤집어 놓고서는 내 불안과 불행을 전시하기 이르렀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푼수긴 하지만.
"내 주변에 이혼한 사람들도 다 비슷한 고민을 하더라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불안해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거 말이야.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다들 그래."
내 불안 퍼레이드 끝에 그가 해준 이야기는 내 불행 전시가 그리 성황리에 마쳐지지 못했다는 의미였고 그게 난 어쩐지 마음 놓였다.
그러다 약간의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지금 좀 위험한 것 같아요."
"뭐가?"
"나의 빅 데이터에 의하면 남자들은 흥분하면 숨이 약간 거칠어지거든요. 지금 조금 그런 것 같아요."
"그래? 난 별생각 없었는데, 그렇게 말하니 좀 이상해지잖아."
이윽고 또다시 긴 정적.
"그럼 이 타이밍이 키스할 타이밍인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이래서 문제예요.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는 한동안 혼잣말을 하며 어떻게 할지 고민 고민 안절부절못하다 결심이 섰는지.
그의 얼굴이 점점 내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난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입술을 기다렸다.
그렇게 우린 키스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전 남편 이외에 다른 남자와 약 10년 만에 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