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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은도 Mar 19. 2022

소개팅앱 비기닝

코로나 백신에서 소개팅앱까지

벌써 작년 여름 이야기다.

처음 만났던 날의 날씨를 기억한다. 더운 여름밤 커다란 공원의 한 귀퉁이에서 열심히 걷기, 또는 달리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나타나던 모습. 이상하게도 그 모습을 꽤나 자세히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그를 만난 건 소개팅앱에서였다.

소개팅 앱에 대해서는 풍문으로 들어본 정도.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대단치 않은 외모에 셀카 기술도 엄청 후져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불특정 다수에게 내 사진을 공개한다?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절레.

그래도 내 주변에 소개팅앱을 체험한 사람들이 생겨났고 친구도 한번 해 보라며 적극 권하기도 했다. 나도 솔깃한 지점이 있었겠지.

 

그러니까 컨디션이 저조할 때 사람은 뭔가 묘한 결정을 하게 되는 법이라고. 코로나 백신을 맞고 방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서 뒹굴거릴 때, 그 무료함이 내 손가락을, 아니, 마음을 움직인 건지 소개팅앱을 다운받았다. 지루함, 외로움, 역시 이런 요소가 인간이 미친 짓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요.

 

그냥 어떤 곳인지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역시 뭘 한번 하면 쑥 빠지는 편이라 나도 모르게 열심히 프로필 사진을 고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발을 들인 그곳은 별천지 같았다.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99명이 넘는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가입한 사람이 앱에 관심을 갖게 유도하기 위한 어떤 장치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때는 너무 신기하고 기분 좋아서,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말 걸어온 몇몇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대체 한 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한 명 선택해서 진득하게 대화했으면 될 것을 그때는 뭘 몰라서 이 사람 저 사람 대화하다가 그냥 망해버린 것 같다. 엄청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과 대화에 집중했으면 좋았을 걸. 그렇게 몇 번 망치다가 그냥 차라리 빨리 만나보라는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대화가 되는 사람에게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곧 나와 약속을 잡았다.

 

그리하여 여름밤 내가 사는 곳 근처 가장 큰 공원의 한 귀퉁이에서 함께 서 있게 된 우리.

 

트랙을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을 뚫고 공원 한가운데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그 너른 잔디밭에 밤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되는대로 거닐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 앱으로 누구 만나본 적 있으세요?”

 

아, 네. 전에 만난 사람이 있긴 한데, 엄청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만난 날 갑자기 바다 보고 싶다고 하고.”

 

저는 처음 만나보는 거예요. 그런데 친구 말로는 이 앱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자려고 만나는 거래요. 앱에서 만난 사람이랑 자 본 적 있으세요?”

 

아뇨. 그런 적은 없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별 괴상한 질문을 다 던졌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난 그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없었고, 앞으로 관계가 발전될 것 같은 느낌이 없었기에 편하게 아무 질문이나 했던 것 같다. 소개팅 앱 실태조사 같은 느낌의 질문들을 그에게 던졌으니까. 

 

그래도 그와의 대화는 꽤 잘 이어졌다. 나의 다소 황당하고 무례할 수 있는 질문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졌고, 그는 자신의 일과 생활에 대해 꽤 재미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말재주가 좋은 사람. 재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머리가 좋다는 게 아닐까. 난 언제나 달변가에게 약하다. 

 

그의 청산유수 같은 말재간에 난 옆에서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며 북 치고 장구치고 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잘 흘러갔다. 하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느낌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난 적당히 대화를 접고 귀가를 선언했다. 

 

그가 집까지 태워 주겠다고 했지만 처음 본 사람의 차에 올라타긴 무서워서 완곡히 거절하고 지하철까지 걸어갔다. 그는 한사코 역까지 바래다주길 원했고 그렇게 걸으면서도 대화는 이어졌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자신의 다른 사업을 할 정도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그런 점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만의 일을 따로 찾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역에 가까워 오자 그는 자신의 사업체 명함을 하나 건네줬다. 

사실 난 아직도 그 명함을 간직하고 있다. 버리자 싶으면서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꼭 그 사람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그 사람이 꿈에 나왔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내 꿈에. 비로소 증명된 걸까. 내 무의식의 주인이 내가 아닌. 내 마음을 내 맘대로 호령할 수 없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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