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은도 Mar 19. 2022

소개팅앱 비기닝

코로나 백신에서 소개팅앱까지

벌써 작년 여름 이야기다.

처음 만났던 날의 날씨를 기억한다. 더운 여름밤 커다란 공원의 한 귀퉁이에서 열심히 걷기, 또는 달리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나타나던 모습. 이상하게도 그 모습을 꽤나 자세히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그를 만난 건 소개팅앱에서였다.

소개팅 앱에 대해서는 풍문으로 들어본 정도.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대단치 않은 외모에 셀카 기술도 엄청 후져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불특정 다수에게 내 사진을 공개한다?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절레.

그래도 내 주변에 소개팅앱을 체험한 사람들이 생겨났고 친구도 한번 해 보라며 적극 권하기도 했다. 나도 솔깃한 지점이 있었겠지.

 

그러니까 컨디션이 저조할 때 사람은 뭔가 묘한 결정을 하게 되는 법이라고. 코로나 백신을 맞고 방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서 뒹굴거릴 때, 그 무료함이 내 손가락을, 아니, 마음을 움직인 건지 소개팅앱을 다운받았다. 지루함, 외로움, 역시 이런 요소가 인간이 미친 짓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요.

 

그냥 어떤 곳인지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역시 뭘 한번 하면 쑥 빠지는 편이라 나도 모르게 열심히 프로필 사진을 고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발을 들인 그곳은 별천지 같았다.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99명이 넘는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가입한 사람이 앱에 관심을 갖게 유도하기 위한 어떤 장치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때는 너무 신기하고 기분 좋아서,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말 걸어온 몇몇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대체 한 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한 명 선택해서 진득하게 대화했으면 될 것을 그때는 뭘 몰라서 이 사람 저 사람 대화하다가 그냥 망해버린 것 같다. 엄청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과 대화에 집중했으면 좋았을 걸. 그렇게 몇 번 망치다가 그냥 차라리 빨리 만나보라는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대화가 되는 사람에게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곧 나와 약속을 잡았다.

 

그리하여 여름밤 내가 사는 곳 근처 가장 큰 공원의 한 귀퉁이에서 함께 서 있게 된 우리.

 

트랙을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을 뚫고 공원 한가운데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그 너른 잔디밭에 밤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되는대로 거닐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 앱으로 누구 만나본 적 있으세요?”

 

아, 네. 전에 만난 사람이 있긴 한데, 엄청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만난 날 갑자기 바다 보고 싶다고 하고.”

 

저는 처음 만나보는 거예요. 그런데 친구 말로는 이 앱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자려고 만나는 거래요. 앱에서 만난 사람이랑 자 본 적 있으세요?”

 

아뇨. 그런 적은 없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별 괴상한 질문을 다 던졌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난 그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없었고, 앞으로 관계가 발전될 것 같은 느낌이 없었기에 편하게 아무 질문이나 했던 것 같다. 소개팅 앱 실태조사 같은 느낌의 질문들을 그에게 던졌으니까. 

 

그래도 그와의 대화는 꽤 잘 이어졌다. 나의 다소 황당하고 무례할 수 있는 질문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졌고, 그는 자신의 일과 생활에 대해 꽤 재미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말재주가 좋은 사람. 재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머리가 좋다는 게 아닐까. 난 언제나 달변가에게 약하다. 

 

그의 청산유수 같은 말재간에 난 옆에서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며 북 치고 장구치고 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잘 흘러갔다. 하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느낌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난 적당히 대화를 접고 귀가를 선언했다. 

 

그가 집까지 태워 주겠다고 했지만 처음 본 사람의 차에 올라타긴 무서워서 완곡히 거절하고 지하철까지 걸어갔다. 그는 한사코 역까지 바래다주길 원했고 그렇게 걸으면서도 대화는 이어졌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자신의 다른 사업을 할 정도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그런 점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만의 일을 따로 찾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역에 가까워 오자 그는 자신의 사업체 명함을 하나 건네줬다. 

사실 난 아직도 그 명함을 간직하고 있다. 버리자 싶으면서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꼭 그 사람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그 사람이 꿈에 나왔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내 꿈에. 비로소 증명된 걸까. 내 무의식의 주인이 내가 아닌. 내 마음을 내 맘대로 호령할 수 없다는 게. 






매거진의 이전글 오픈 카톡 클래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