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소개해 주는 남자
"저 혹시 30대 후반도 괜찮나요?"
들어가자마자 내가 보낸 첫마디. 단톡방에서 강퇴당한 게 왠지 나이 때문인 것 같은 자격지심을 느꼈던 게 이 첫마디에 반영됐다. 물론이라며 나를 반갑게 맞아준 Z는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
그를 Z라 칭한 이유는 내가 이혼 후 처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남자 사람이었기에, 그라운드 제로.
이혼이라는 내 인생의 대 폭발과도 같은 사건 이후 공터에 들여놓은 첫 번째 남자 사람이기도 했고, 말 그대로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기에 제로. Z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건전한 대화를 했다.
그게 아주 심하게 건전했는데, 대화 주제가 바로 음악. 그중에서도 클래식 이야기를 주로 했기 때문이다.
Z는 작곡을 전공한 사람이었고 언젠가부터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매우 즐기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했다. 클래식을 듣지 않음에도 그가 추천한 곡들이 꽤 좋다고 느껴졌으며 그중에서 특별히 좋아하게 된 곡도 있었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라던가, 쇼팽의 '녹턴 1번'은 아직도 즐겨 듣는다.
들을 때마다 Z를 떠올리게 한다.
굳이 클래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추천받았는데, 워낙 광범위했다. 그래도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Z가 대학시절 직접 작곡했던 곡인데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과 처음 대화해 본 것이라 워낙에 신기했다. 반면 Z는 나를 신기해했는데, 나도 나름 다양한 곡들을 알고 있었고 그게 Z가 아는 범위와는 겹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서로 이런저런 곡들을 추천하다 보면 대화가 핑퐁처럼 이어지곤 했다.
두 달 남짓을 Z와 대화하면서 음악을 넘어서 주식이나 심지어 토요일에 직접 지은 시 한 편을 서로 보여주는 걸 하기도 했다.
Z의 시는 직접적이기보단 상징적 단어를 써서 돌려 표현하는 은근한 맛이 있었고, 나의 시는 매우 직접적인 표현들이 주를 이뤘다. 그만큼이나 취향이 상반됐기에 서로의 플레이 리스트가 그처럼 교환될 수 있었을 것이다.
Z는 기본적으로 예의 바르고 선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이혼 후 다음 해의 여름, 거의 일 년이 지난 즈음의 나를 많이 위로해준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함께 했던 수많은 새로운 좋은 음악들. 꽤나 호사스러운 대화, 호사스러운 플레이리스트로 채워진 시간. 그 친구로 인해 상당한 부분의 외로움이 의식되지 못한 채로 지나쳐갔다.
온라인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그런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게 감사한 일이다.
그 친구와의 대화가 드물어지기 시작한 건 내 생활의 새로운 막, 그 막이 올라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폭풍전야.
그래서 Z와의 시간들이 더 평화로웠는지 모른다.
스스로 부른 격풍이 저만치서 내게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