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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은도 Mar 05. 2022

진짜 이혼 절차

부부라는 관성

전 남편은 순순히 내 이혼 의사를 받아들여 줬다.


그와 난 헤어지기로 하고 나서 오히려 더욱 사이가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가 분위기 좋은 식당을 알아봐 같이 갔었는데 우리가 같이 가본 곳 중에서 제일 비싸고 맛있었다. 못 갈 정도로 비싼 것도 아니었는데 왜 한번 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밖에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 가 인기 있는 카페도 가보고 아웃렛에 데려가 옷도 사줬다.

그 옷은 정가가 80만 원이었는데 세일해서 30만 원에 팔고 있었다. 입어본 순간 너무 예뻐서 도저히 안 살 수가 없었는데 그는 선뜻 계산해 주었다. 그로부터 그는 지금까지도 자기가 내게 80만 원짜리 옷을 사줬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난 실은 30만 원임을 상기하는 입씨름을 한다. 옷 이야기가 나오면 이게 자동 수순이다.


그 시점엔 아직 이혼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었지만 이미 돈은 서로 나누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원래는 내가 돈 관리를 하고 있었기에 남편에게 뭔가 받는다는 기분이 딱히 들지 않았다. 이건 내가 후회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니 돈 관리를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싶다. 서로 독립된 채 서 있다는 느낌이 우리에게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우린 이혼절차가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절대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즐겁게 보냈고 오히려 더 웃으며 보냈다. 그 당시 내가 지었던 미소가 생각난다. 부동산에서 함께 계약서에 올라있던 그의 명의를 빼고 돌아오는 날 볕은 너무 좋았고 난 그의 팔짱을 끼고 함께 먹을 음식을 장 봤다. 난 웃고 있었다. 이혼한다는 게 좋다거나 해방감의 미소 같은 게 아니었다. 오래간만에 그와 연애하던 시절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것이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설렘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우린 다시 데이트를 시작한 커플같이 그 시간을 통과했다.


그 시간을 그렇게 보낼 수 있었던 것에 지금 생각해도 그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내가 반대 입장이었다면 우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을 거라 확신한다.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당연하고 그래서 아무 감각 없이 흘러가버리는 것이었는데 당시 그는 종종 그 아무것도 아닌 시간에 나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아무 날도 아니고 둘 다 집에서 입는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세수도 안 한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진들이 그렇게 우리에게 남아있다.


헤어지고 나서도 우린 자주 만나 함께 저녁을 하거나 공원 산책 등을 같이 했다. 그의 새 거처가 바로 옆동네이기도 했고. 난 항상 손이 좀 컸던 것 같은데 이혼하니 그게 더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그래서 실컷 저녁 요리를 하고 나면 꼭 그를 부르게 됐다. 그러면 그는 내 거처로 퇴근을 하고 익숙하게 가방을 벗어 놓고 테이블에 앉는다. 그는 먹성이 좋아서 내가 식사를 다 한 후에도 한참을 더 먹는다. 난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와 식사하면 몇 끼에 걸쳐 먹을 양을 한 번에 해치울 수 있다.  좋기도 하고 남겨줬음 싶기도 하고. 그는 꽃게탕, 등갈비 김치찜, 샤부샤부, 두부찌개, 등등을 좋아한다. 지난가을에도 통통한 활꽃게를 사다 꽃게탕을 끓여줬다.


어떤 때는 그가 날 초대한다. 새로 발굴한 맛있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그가 차려준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는 돼지고기 수육을 즐겨하고, 소고기를 구워 주기도 하고, 봄에 주꾸미 제철엔 활 주꾸미를 사다 삶아 주기도 하고. 같이 있다 보면 대충 때울 끼니도 기어코 거창해진다. 마지막으론 내 사랑 하겐다즈 녹차 맛 아이스크림 바를 후식으로. 그가 자주 애용하는 편의점엔 녹차 맛이 자주 솔드 아웃됐다.


헤어지던 해 여름이었나, 장마에 비가 무섭게 왔는데, 집이 바로 뒤가 산이어서 그칠 줄 모르는 비가 걱정되다 못해 무서운 지경에 달했을 때, 난 도저히 공포를 못 참고 그의 집으로 피신했다. 이혼 전엔 살림을 주로 내가 했기에 그다지 편안한 느낌을 못 느꼈는데, 헤어지곤 그의 집에 가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설거지도 그가 하고 실컷 놀고 나와도 뒤 정리는 그의 몫이다. 난 늘어지게 누워 티브이를 보며 뒹굴 거리다 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면서도 육체적 관계 한 번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조차 형성이 안된다. 오히려 야한 농담을 하면 면박을 받는다. 아무래도 난 베스트 프렌드와 결혼했던 것 같아.

그의 집 근처 공원에서 달리기를 할 때면 운동에 질색하는 그는 내 가방이나 외투 따위를 들어줬다. 그리고 내가 뛰는 수분 동안 핸드폰을 보며 날 기다려 줬다.

전시회를 보러 가면 그는 동행하고 싶어 했다. 내가 보는 것에 곧잘 공감해 줬다. 취향은 상이하지만.


별거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진짜 이혼절차 란 내게 이 과정들이었다. 부부로 지내던 세월은 꼭 관성처럼 그 세월만큼 굴러온 힘으로 이혼 후에도 지속된다. 계속 이렇게 만나는 게 과연 서로에게 좋은 일인지 가끔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당시엔 그렇게 됐다. 서로를 찾게 됐다.


그렇게 일 년 정도를 보내고 나서야 우린 조금씩 서로를 찾지 않았다. 내가 더 많은 걸 원하게 됐기에, 이렇게 머무르고 싶지 않았기에 점점 선로를 틀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도 그런 나를 구태여 잡지 않고 그 나름대로 잘 생활했다. 참 신기하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지낼 수 있는 걸까. 외롭지 않은 걸까. 나는 외로움이란 강풍 앞에 선 흔들리는 촛불 같은데.


지금도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연락을 하거나 가끔 만나기도 한다. 며칠 전엔 집에서 어머님이 만든 된장찌개를 얼려 놨으니 와서 먹고 가란다. 시어머님은 식당을 하셔서 손맛이 상당하다. 내가 그 된장찌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는 안다.


이런 관계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우린 각자의 길을 가야 하겠지만 일단 관성은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많이 신경 쓰일 것이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도 그렇겠지. 그는 내가 만난 남자가 잘해주는지 묻기도 한다. 우리가 무슨 할리우드 배우도 아니고 이런 쿨 한 관계 뭘까. 이게 맞는 걸까. 이게 옳은 걸까.


관성. 모든 걸 자연법칙인 관성 탓 인양. 관성, 관성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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