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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은도 Mar 25. 2023

나쁜, 봄

치명적인

봄, 너는 참 나빠. 너는 늘 그렇듯 이번에도 말없이 찾아왔더라. 


넌 마치 말도 없이 밤에 불쑥 찾아와 창문을 두드리는 나쁜 남자 같아. 난 아직 널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질 않단 말이야. 밤은 짧고, 넌 달콤하고, 또 말도 없이 불쑥 사라져 버릴 걸 알면서도 난 언제나 네게 문을 열 수밖에 없단 말이야. 그래서 네 버릇이 나쁘게 들어버린 거야. 그래서 매년 이렇게 살짝 와서 날 놀리는 거야.     


며칠 전, 뒷산에 갔는데 말도 없이 개나리가 폈더라. 참 어처구니없더라. 분명 엊그제만 해도 마른 가지였잖아. 그 앙상함으로 나를 안심시켰잖아. 넌 언제나 이런 식이야. 언제나 이렇게 나를 놀라게 하는 거야. 분함에 주먹을 말아 쥐고 조용히 이를 갈며 산을 올라. 성급하게 몇몇 터져버린 벚꽃 하며, 하얗게 향기 좋은 이름 모를 꽃나무에 벌써 봉우리가 망울망울한데……. 이러지 마, 이건 불공평해. 난 그저 며칠 바쁘게 살았을 뿐이라고. 그 며칠 사이에 이러기야?     


분명 잘못한 게 없는데 널 대하는 나는 항상 죄인이야. 이 죄책감이 불안한 공기처럼 일렁이며 내 맘을 흔들어 놓는데, 알면서도, 알면서도 또! 사랑에 빠지고 행복해하다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린 너의 자취에 허탈해지고. 난 아직 그 향기 좋은 망울진 꽃의 향을 충분히 킁킁거리지 못했고, 천지에 흐드러진 아카시아 향기를 가슴속 충분히 저장하지 못했단 말이야. 벌써 화가 나. 또 얼마나 아름다울 것이며 또 얼마나 안타까울지 난 벌써 다 알고 있잖아.      


여름은 푸른 녹음으로 나고, 가을은 풍성함으로 나겠지만 겨울은? 그 마른 가지를 또 어떻게 견뎌? 소나무의 에버그린도 그쯤 되면 지긋지긋해지는 거야. 새싹의 연두가 그리워 지쳐갈 때쯤 기적처럼 넌 다시 등장해 내 앞에 영웅행세 하겠지.


 봄, 네가 좋아. 네가 이가 갈리게, 치가 떨리게 좋아. 할 수 있다면 널 묶어버렸을 테지. 

    

그러니까 말해줘. 내가 잘살고 있다고, 봄바람과 달콤한 아카시아 냄새, 벚꽃의 화사함을 즐길 줄 아는, 이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냥 모든 걸 모레처럼 흩어버리고 있지 않다고 안심시켜 줘. 

다시 떠날 널 미리 슬퍼하는 날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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