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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Mar 14. 2018

슬프지만 아프지 않다

태국 아유타야 

일년 내내 더운 나라.


겨울이 되면 좀 덜 덥고 

여름이 되면 좀 더 더운 태국입니다.





방콕에서 머물다

구름을 방패삼아 쉬엄쉬엄 2시간을 이동해서 

아유타야로 갔습니다.





전성기를 누렸던 400년,

앙코르왕국과 크메르왕국까지도 흡수하는 동안

줄곧 태국의 수도였던 아유타야는


 


처참히 무너진 채 

텅 비어 있었습니다.



위세를 떨치던 버마군의 공격으로 아유타야가 파괴되자



태국왕조는 두번째 공격이 두려워 수도를 방콕으로 옮기고

아유타야는 그대로 200여년 동안 버려졌습니다.


금박으로 덮혀 있었던 체디는 모두 

불에 태워지고 녹여져 전리품이 되고 




몇백년의 비바람으로도

씻겨내려 가지 않은 검은 재와 이끼가 

옛날의 빛나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의 정복자들은 그랬답니다.


아유타야왕국은 크메르왕국을

버마는 아유타야를

몽골은 버마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해

깨끗히 죽이고 모조리 태웠습니다.




같은 신을 모시는 불교의 나라에서 전쟁을 하면서

어찌 이리 불상들을 모조리 참수를 하였는지

다른 민족의 부처는 한낱 돌덩이에 불과했는지.



식솔들이 처형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볼수없어 눈을 감아버린 불상.



억지로 끌어낸 온화함이 더욱 슬퍼지는 얼굴을

마음속으로 쓰다듬어 보다 

놓아주고 돌아섭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담벼락 바깥에 홀로 있던 불상에게로 갑니다.


모두 똑같아 보여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이 가는 하나를 발견하기 마련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쓰다듬으면

놀랍게도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숨을 쉬는 게 보입니다.



상처입은 어깨

불에 그을린 얼굴.

가까스로 봉합된 그의 형체가 다행스럽다가도


눈꺼풀을 살며시 열어보면

그날의 장면이 망막에 맺혀있을 것 같아 울컥.


아프지 않다.

그들에겐 한갖 미물인 내가 이리 되었을 때

살아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느냐.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울컥.


긴 호흡이 흐느낌으로 바뀔 때까지

얼마나 시간을 보낸건지...


해는 바로 머리 위.

사정없이 내리꽂고 있었습니다.







베어져 나간 불상의 머리 중 하나가 

긴 시간 땅속에 묻혀 있다가

200년 후에 보리수나무 뿌리와 함께 

세상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려고 멀리서 날아와서


저절로 숙연해지는 사람들앞에 마주한


단단한 입술

날카롭게 드러난 콧등

눈물을 흘리고는 있으나 

담담한 표정






괜시리 눈물이 아른거리는 것은 

너무나 뜨거운 햇빛때문이라 여기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나무 밑에 앉아 쉬다가






천천히 둘레를 걸으며

가까이서 보면 놓치기 일쑤인 선들을

따로 불러내어 둘러봅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곳에서



영원을 약속하는 젊은부부가 있고


그 앞에 

어려운 일을 함께 견디고

15년의 평범을 쌓아올린 후

낡은 부부가 된

남편과 내가 서 있습니다.



상처입은 채 버려진 모습일지라도 

오랜세월동안 그대로 였기에

여전히 가치 있는 이곳처럼


당신이 어떻게 변해가든 

오랜 세월 내 옆에 있어준다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대해 주겠다는 

그날의 약속.


우리는 잘 지키고 있나

괜히 한번 쳐다보고

부채질을 해주며 피식 웃는 오늘. 




그들의 신에게

그들의 행복을 기도하며 

살며시 우리의 행복도 끼워넣기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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