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해몽
덜컹이는 기차는 ㄱ자로 달리다 ㄷ자로 구부러졌고, 다시 ㄹ자로 변형되었다. 기차는 마음대로 형태를 바꾸며 달렸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헤집으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통유리창 너머로는 괴상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풍경은 어릴 적 어두컴컴한 터널을 배 타고 지나며 바라보았던 놀이공원의 테마관 같기도 했다. 부어 있는 손가락의 난쟁이들, 이끼 속의 작은 집들. 나는 누구를 찾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마음만 급했다.
고개를 든 순간 계단 위에 어떤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몇 번이나 기차 안을 돌았지만 계속 제자리예요. 어떻게 하면 이곳을 나갈 수 있나요?"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어요."
그 사람은 이 말을 하고 사라졌다. 순간 어제 감동 깊게 읽으며 줄을 그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마음의 지옥의 사슬은 자신만이 끊을 수 있다는 것. 나는 단숨에 '집'이라고 외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전에 읽었던 '리틀 라이프'에서 주드는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주드를 살리는 마법의 단어는 '안녕'이었다. 그토록 쉬운 방법을 모르고 이제껏 고통스러워했던 자신을 후회했다. 최근에 막 끝낸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빌 펄롱을 구원하는 단어는 '실천'이었다.
나는 꿈속에서 헤매며 '집'을 외치며 돌아왔다. 늘 그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불편했고, 일을 벌리면 다급하게 들어와 이불 밖을 나가지 않았다.
밀어줄 사람이 없으면 번지 점프를 평생 못할 사람처럼 산 꼭대기에 서 있다. 평생 소원인 하늘을 나는 것처럼 그렇게. 발목을 꽉 잡은 줄이 안전한지 몇 번이나 점검해도 절대 혼자 뛰어내리지 못한 채로 서 있다. 내일은 할 수 있을까? 우연히 누군가 밀어준다면 심장과 함께 곤두선 머리로 소리를 지를 것이다.
오늘도 해냈다.
어쩌면 나를 지탱하는 것은 단어일지도 모른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나를 이끌어주는 말들. '집'이라는 단어는 나를 안전하게 돌아오게 했고, '안녕'은 누군가를 위로하며 이별을 준비하게 했다. 그리고 '실천'은 작은 움직임 속에서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 모든 단어들은 내 안에서 속삭이며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지옥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나만의 단어,
오늘은 "조금은 나아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