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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끝나간다고 느껴지는 5월이 되었을 때 즈음, 아니 아마도 이 전부터 처음으로 연주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연주가 하기 힘들고 지친다가 아니라, 보다 정확히 말하면 표현하고 싶은 것이 없어졌다. 유학을 중 긴 여름방학을 타지에서 보낼 때, 갑자기 모든 친구들의 각각의 나라로 흩어지고 남은 몇몇 친구들마저 미국 각 지역으로 흩어졌을 때의 한산함을 지금 가지고 있다. 글쓰기는 늘 조심스럽다. 너무 직설적인 표현으로 남는 것이 다양한 해설과 버전을 겸비하는 음악과는 다른 방법으로 소통되기에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기억하는 음악수업이 내 생활에 존재한 지는 30년이 조금 안되는 것 같다. 그동안 다양한 레슨과 수업을 듣고, 또 다시 다양한 레슨과 수업을 하게 되어서 내게는 요즘 ‘리추얼’이라고 표현하는 그것 만큼이나 친숙하고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음악적인 것은 아니고, 음악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학생신분을 벗고 자연스럽게 레슨을 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종류의 레슨을 해 보았고,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여러 형태로 만나게 되었는데 이야기는 소위 ‘똑똑한 엄마들’이 나를 선생님으로 모시면서 시작된다. 신기하게도 오히려 그들에게서 배울 게 더 많았다, 대부분.
우선 나의 소중한 학생들의 동의없이 그들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공유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수업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나의 의견이 공유될 텐데, 이것이 바로 내가 이야기하고 자하는 ‘개입의 정도’이다.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을 많이 사랑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성장배경과 사회적 역할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종류의 행복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레슨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특히 개인레슨에서 느끼는 ‘교육’적 측면은 나로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부분이었다. 모든 엄마들은 본인이 경험했던 것보다 더 나은 환경과 질적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싶어했다.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똑똑한 엄마들은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2/3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