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레슨을 통해 얻은 Lesson을 위한 개입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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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란 조건에서 포인트는 ‘강압적인 부분이 없다는 것’ 흔히 ‘자발적’이라고 재해석되는 부분. 그리고 만족(satisfaction)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예시로 들자면 나는 내가 남들보다 영어공부를 재밌게 했다고 생각한다. 감사와 성향을 떠나서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스토리는 이러하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TV와 비디오를 좋아한다. 우리집에 있었던 비디오는 원본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판매되는 정품을 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복사해온 자막이 없는 영어판 디즈니 비디오가 그 ‘누군가’의 자필이라고 추정되는 글씨로 ‘ex)알라딘, 인어공주’라고 종이테이프위에 적어 둔 비디오로 나의 시청은 시작되었다. 들리지 않았고 이해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음악을 듣고 그림으로 내용을 추측하고 재밌으니까 또 보고, 또 보고 하는 식으로 언어를 ‘사운드’로 배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약간의 교육과정을 걸쳐 비디오를 다시 보게 되니 아는 단어가 조금씩 들리게 되었다. 다른 집에서 똑 같은 내용의 비디오가 예쁜 플라스틱 커버와 편안한 한글 자막이 같이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예시일 뿐, 다른 과목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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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행운을 사람들은 ‘자발적’이라는 표현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Input과 알고리즘을 심어주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면 간단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한가지가 더 신경 써야할 부분이 있다. 바로 그 어렵다는 ‘관계’이다.


관계. 벌써 어렵다. 소중한만큼 이성적이기 힘들다는, 거의 반비례에 속하는 것 같은 이 형태가 부녀 혹은 부자간에 존재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한가지 공식은 존재하는 것 같다. 바로 일방적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 ‘여유’라는 것은 너무나도 다양한 이유로 존재하겠지만 혹은 절박함 속에서는 사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단어이겠지만 이것은 ‘방치’와는 다른 개념이다. 나는 이것을 소중함을 지킬 수 있는 개입의 정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슬프게도 절실함과는 관계없는 잔인한 단어이기도 한 것 같다.


‘Love is a losing game’이라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랫말처럼 더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이 어떤 의미에서의 을이 된다. 더 슬픈 사실은 내가 더 신경 쓴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인지했을 때 상대방은 더욱 여유로워진다. 레슨을 하면서 제일 발전이 더딘 학생은 대부분 어머니가 학생보다 더 열심인 경우였다. 학생들은 안다. 어차피 엄마가 먼저 신경 쓸 것이라는 걸. 굉장한 함정이다. 앞서 말한 ‘더 똑똑한 엄마’들은 이러한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들은 교육의 과정에서 학생이 실패해서 돌아오거나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음으로써 마치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이들의 자녀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다른 과목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있었으며 훗날 가족 관계에서도 특별한 굴곡을 나타내지 않았다.


(3/3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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