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리멤버 인플루언서 활동 당시 작성했던 글입니다.
"남의 이야기로 나를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사람이나 회사나 똑같습니다"
오늘은 직장인들이 보고서를 적을 때 (자의든 타의든) 한 번쯤은 언급했을 벤치마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관련해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몇 년 전 윤리/컴플라이언스 담당들이 모일 자리가 있었는데 명함교환을 하던 중에 (굴지의) 모 기업에 다니는 분을 향한 원망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근무기준을 그렇게 타이트하게 만들면 어떡해요!!"라는 원성이었죠. 정리해 보면 해당 기업에서 흡연자들이 흡연을 하러 갈 때마다 팀장 보고를 하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몇몇 기업에서는 담당들에게 해당정책을 벤치마킹해 보라는 지시를 한 거죠. 전 문화담당이라 '이건 또 무슨 새로운 방식의 조직파괴법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놀랍게도 해당기업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는 거예요!! 굉장히 억울한 표정으로 해명을 하시던 담당분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해요.
이런 억울한 일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죠. 소위 잘 나가는 기업에서 도입한 무언가가 있다면 1. 맥락 없이 필요한 부분만 전해 듣고 2. 필요에 따라 각색하여 도입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이유 때문에 벤치마킹을 통해 모든 걸 바꾸겠다는 시도는 추천하기 어려워요. 특히 문화의 영역에서는 더 그렇죠.
생각해 보면 시대가 변하면서 대상 기업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 벤치마킹의 대명사 같은 기업들이 존재하거든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업들이 맞아요. 그 기업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 애증의 벤치마킹입니다.
무분별한 벤치마킹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무맥락의 무서움
벤치마킹의 가장 큰 이슈는 맥락을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맥락을 파악하기 힘든데 남의 회사에 대한 정보는 얼마나 제한적일까요. 맥락을 파악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죠. 무맥락이 가장 큰 문제는 과정 상의 이슈. 특히 실패의 경험을 모른다는 점이에요. 하나의 제도나 정책을 도입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try & error 가 있어요. 그런데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정보는 최종결과물 (a.k a 자랑하고픈 성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정 상의 어려움은 대부분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런 상황에서 결과가 좋아 보인다고 제도나 정책을 도입한다는 건. 문자 그대로 무리수죠. 전 벤치마킹의 효용은 실패의 경험을 나눌 때 극대화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의미에서 언론에 노출된 결과물을 가지고 벤치마킹을 하는 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각색의 유혹
보고서에 벤치마킹이 들어가는 이유는 한 가지죠. 설득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벤치마킹의 내용이 생각보다 곡해돼서 기입되는 경우가 많아요. 전문용어로 짜깁기인데요. 답을 정해놓고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벤치마킹을 활용하는 거죠. 앞서 말씀드렸던 케이스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는 타이트하게 근무를 조이고 싶은 니즈가 있었을 것이고 벤치마킹 대상기업의 케이스는 그런 식으로 활용되어 버린 거죠.
특히나 대기업일수록 why를 설명하는데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쏟아요. 누가 들어도 해야 되는 일인데 그걸 굳이 그럴싸한 워딩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시간을 쓰는 거죠. 이런 기업일수록 오히려 더 활발한 각색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요.
지금까지 벤치마킹에 대한 뒷담화를 좀 해봤는데요. 벤치마킹은 늘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당연히 늘 나쁘기만 한 건 아니죠! 벤치마킹을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순간 혹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임팩트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법인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각성이 필요한 시기가 있어요. 우리가 하는 게 정말 맞나. 혹시 우리가 놓치는 부분은 없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죠. 소위 임팩트가 필요한 순간에는 벤치마킹이 큰 도움이 돼요. 일종의 각성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하지만 거듭 말씀드리면 벤치마킹으로 모든 답을 내는 건 비추랍니다. 대부분의 답은 우리가 직접 찾는 거니까요.
-실패의 경험을 나눌 수 있다면
전 벤치마킹의 효용은 실패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어떤 제도나 정책이 우리 조직에 적용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사전에 점검하는 거죠. 그런데 성공의 결과를 반영하는 것보다 실패의 경험을 찾는 일은 몇 배의 수고로움이 필요해요. 벤치마킹 대상기업들도 만나자마자 실패의 경험을 나눌 리 없거든요. 힘들고 오래 걸릴 수 있는 일이지만 성공적인 벤치마킹을 위해서는 노오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용이 아닌 형식을 참고한다면
의외로 형식에 있어서의 벤치마킹은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넷플릭스의 자유와 책임 덱을 벤치마킹 한다고 했을 때, 자유와 책임이라는 내용을 벤치마킹하는 건 비추지만 덱의 형식을 벤치마킹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책임라는 콘텐츠에 집중하지만, 넷플릭스가 대단한 이유는 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소의 방향성을 하나의 덱에 정리했다는 그 자체거든요. 덕분에 넷플릭스를 다니는 사람이든 아니든 이 회사가 어떤 문화를 갖춘 회사라는 걸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소속조직의 준비도(readiness)를 안다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게 반드시 선행되어야 해요. 그런데 벤치마킹 대상 기업의 분석은 매우 열심히 하면서 정작 소속조직에 대한 분석이 미비한 경우가 종종 있어요. 실제로 벤치마킹을 오신 기업들에게 현재 기업이 직면한 상황(페인포인트)이나 준비도를 물어보면 상당수는 추상적인 수준의 답변을 하시거든요. 이런 경우는 아무리 좋은 기업의 제도나 정책을 열심히 분석해서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어요.
오늘은 애증의 벤치마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어요. 증으로 시작해서 애로 끝난 느낌이 살짝 있지만 결국 벤치마킹이든 컨설팅이든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다만 맹목적으로 벤치마킹이나 컨설팅을 활용하는 건 정말 비추에요. 기업이든 개인이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거든요! 남의 이야기는 나를 성찰하는데 도움이 될 뿐 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으니까요.
Note: 제가 남기는 글들은 기업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특정 회사나 조직의 상황을 가정하고 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