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과잉 위기의식이 위기를 만듭니다.
*2022년 리멤버 인플루언서 활동 당시 작성했던 글입니다.
업력이 긴 회사에서 문화담당으로 일하시는 분들은 한 번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수 있는데요.
"회사가 위기인데, 직원들이 위기의식이 너무 없는 것 같다. 방법이 없나?"
이 말을 하신 분이 누구고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차치하고, 지금 당장 위기의식을 고양시킬 방법을 찾으라고 독촉하는 상황이고 당장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원하니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안타깝게도) 다음의 객관식 문항 중에 1-2가지를 선택하고 진행하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1. 위기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한다. (엄청난 각오를 담은 선포식, 아니면 전략세션)
2. 위기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강사를 섭외한다. (돈을 내고 혼나보자)
3. 위기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캠페인을 해보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초심)
4. 위기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조직개편을 해보자. (어려운 영어를 써서 TF를 만들어보자)
5. 위기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짠다. (리더들을 위기무새로 만들어보자)
심지어 매년 반복적으로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열과 성을 다하기도 하는데요. 이쯤 되면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갈 수도 있겠죠.
"아, 우리 회사 올해 정말 위기인가 봐요"
"내가 입사한 이후로 위기가 아닌 적이 없는데?"
농담이 아니라 불과 몇 년 전에 다양한 회사의 문화담당들이 모여서 위기의식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데, 창업 후 50년 동안 매년 위기를 강조해 왔다는 근본 있는 회사도 있으니.. 과장이라면 슬픈 거고 사실이라면 문화적으로 굉장히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는 선택입니다.
만성화된 위기의식이 기업문화와 조직 성과에 치명적인 이유는,
1.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아요.
위기의식의 쌍둥이는 비용절감인데요. 쌍둥이 키워드가 조직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혁신활동 일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1개의 혁신은 100개의 실패를 동반하는데, 실패는 곧 비용을 만들게 되거든요. 아무리 재무팀에서 "혁신은 해야죠! 불필요한 돈을 절약하라는 뜻이에요"라고 강조해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시도를 하는데 인색해질 수밖에 없어요.
주의: 방만한 경영을 지속하라는 뜻은 아니에요. 만성적인 위기강조로 인한 만성적 위축이 문제예요. 경영상태를 점검하고 자원의 재배치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건 매우 건강한 경영활동이라고 생각해요.
2. 동료(특히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어요.
건강한 위기의식은 조직의 응집력을 결속시키는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요. 만성적 위기의식은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만들어요. 그나마 있던 응집력도 해체시켜 버리는 거죠. 아니 한두 번도 아니고 매년 반복적으로 위기를 말하는 회사라니, 그 회사를 이끌고 있는 경영진, 돈을 쓰면서도 제대로 효과를 만들지 못하는 부서들에 대한 원망이 쌓이죠. 단위 부서들은 서로가 하는 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사일로) 위기의 순간, 응집력이 약한 회사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빠른 속도로 무너지게 되거든요.
리더십과 동료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건 그 자체로 슬픈 일임과 동시에,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죠. 조직 내 불신은 수많은 검증 시스템을 필요로 하고 이것이야말로 많은 비용을 양산하거든요. (서로 믿으면 간단히 말로 하면 될 일을, 서로 못 믿으니 or 책임지기 싫으니 서류를 준비하고 검토받고 등등)
3. 우수한 직원들이 떠나요.
애초에 위기의식을 고취하려는 목적은 일시적 조직응집력을 높이는 것이었을 텐데요. 만약 위기의식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면 직원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투입해서 회사를 한번 살려보자는 생각을 할까요 아니면 그 시간과 에너지를 더 나은 회사로 옮기는데 쓸까요. 저라면 매년 위기가 반복되는 회사에는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현실은 냉정하고, 옮기고 싶다고 모두 옮길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시장가치가 높은 포지션, 혹은 역량이 뛰어난 직원들 위주로 이직이 활발해지겠죠. (산업 전환이 어려운 직종이 아니라면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말일 겁니다.)
소결 하면, 위기의식의 지나친 혹은 잘못된 강조, 이른바 과잉위기의식은 1-3번의 이유로 오히려 없던 위기도 만들게 돼요. 그러니 조직에 위기의식을 인위적으로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잠시만 참고, 아래의 글을 읽어주시길 바라봅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구성원들이 회사의 위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제대로 된 회사라면, 굳이 위기의식만 딱 꼬집어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회사와 직원 사이에 공감대를 강화하면 위기의 순간에는 자연스레 위기의식이 생기는 거 아닐까요? 이런 차원에서 제가 생각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아요.
1. 투명한 정보 공유
정보 공유가 반복되고, 이를 해석하는 습관이 형성되면 (반복-습관이 중요해요. 일회성 공유는 의미 없어요) 회사의 위기를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직원들 모두가 회사의 위기를 알 수 있어요. 굳이 특정한 날을 잡아서 엄청난 장표를 보여주며 직원들을 모아놓고 주눅 들게 만들지 않아도 평소에 반복적으로 데이터와 자료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회사-직원의 공감대는 한층 더 높아집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회사들이 자료에는 대외비라고 적어놓고 대내에도 비밀로 하곤 하죠. 그리고는 마치 선심 쓰듯 일 년에 몇 차례 공유세션, 전략세션을 운영하는 거죠. (입장제한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세상에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없답니다. 공유하는 만큼 공감대가 쌓여요.
2. 명확한 전략
전략의 실패를 문화로 극복하는 것만큼 희한한 결정은 없을 거예요. 예를 들어 주력 제품이 경쟁력을 잃었는데, 이게 다 같이 모여서 뭘 선포한다고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협의하며 전략 방향을 수정하고 행동으로 옮겨야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전략 논의 과정에 직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전략수립 후 실행을 함에 있어 직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고 현재 회사가 처한 상황이나 나아갈 방향을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략을 짜다보면, 놀랍게도 대부분의 해결책은 해당 조직의 직원들이 이미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하죠.
3. 행동하는 리더
말로 떠드는 것만큼 허황된 게 없죠. 특히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은 철저하게 행동, 실천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위기에 직면한 조직을 대상으로 조직개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놀라운 점이 하나 있는데요.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중에 하나가 "리더가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리더분들을 인터뷰하면 생각보다 정말 바쁘거든요. 회의해야지 프로젝트해야지 비용 절감해야지 등등 핵심은 직원들이 리더가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할 때의 'what’은 철저하게 행동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요. 즉, 리더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던 프로젝트를 하던 그 자체로는 'what’을 설명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리더가 어떤 행동, 어떤 실천을 했느냐가 관건입니다.
조직개발 과정에서 리더분들과 성공의 크기를 잘게 나누는 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거든요. 리더들은 엄청난 걸 준비해서 한 번에 빵 터트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큰 목표는 낮은 확률로 큰 성과를 만들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높은 확률로 큰 불신을 만들거든요.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짧게 정리하면,
과잉 위기의식을 잘못된 방식으로 주입하면 없던 위기도 만들 수 있다. 오히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전략을 날카롭게 다듬고, 이를 (작은 단위로 나눠서) 행동으로 실천하자. 그러면 직원들은 회사의 위기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정에 (기꺼이) 함께 할 것이다입니다. 그동안 회사가 양치기 소년이 아니었다면,
휴. 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글이 길어지는 걸까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Note: 제가 남기는 글들은 기업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특정 회사나 조직의 상황을 가정하고 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