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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친구 지혜 Dec 31. 2020

플랭크를 하다가 울었다

울고 난 후에 무엇을 했을까요?

맨손 운동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플랭크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플랭크(plank)는 널빤지란 뜻을 갖고 있다. 말 그대로 몸을 널빤지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직선으로 만들고는 팔꿈치와 발끝으로 바닥에 서서 고정하여 코어근육에 힘을 주는 운동 자세이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코어에 힘을 써야 하는 만큼, 스쾃이나 런지처럼 운동 루틴에서 피하고 싶은 운동 자세 중에 하나로도 악명이 높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플랭크를 생각하면, 이를 악물고 자세를 유지하면서 버티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몸무게를 지탱하느라 무거워진 팔꿈치와 매트의 마찰, 그리고 힘을 쓴답시고 꼼지락거리는 발가락까지. 스톱워치 속 숫자는 속절없이 느리게 가고, 그 옆에서 “10초만 더!”라고 외치는 트레이너 선생님의 말은 어찌나 얄미운지 모른다.


사진: 유튜브 '다이어트 빅북'



그런 애증의 플랭크 자세로 내가 매일 운동하던 시기가 있었다. 2016년 여름 무렵이었다. 그때는 운동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하루에 서너 시간씩 주중 내내 헬스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플랭크는 모든 운동 루틴을 끝내고 영혼이 털린 몸뚱이로 하던 마무리 운동이었다. 그 당시에 플랭크를 1분 넘게 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30초도 힘들어서 주저앉는 몸이 되어버렸지만.


다른 운동들도 마찬가지지만, 플랭크는 특히 더 많은 집중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몸을 고정한 채로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간 것 같은 영겁의 시간을 잘 버텨내야 하니까. 다행히 나는 집중력 하나만큼은 칭찬을 받았던지라, 매일 늘어가는 근력에 플랭크도 그저 지나가는 운동 루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플랭크 자세를 취하고 버티기에 들어갔는데, 검은 매트 위로 후둑 뭔가 떨어졌다. 땀인가 싶어서 이마와 뺨을 수건으로 문댔으나, 흐르는 건 땀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어, 이게 뭐지?’ 나는 시간을 재던 스마트폰을 잠시 멈추고 어깨에 걸쳐둔 수건으로 눈물을 재차 닦아냈다. 그럴수록 수건은 더 축축해졌다. 그 순간 내가 했던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슬프다”가 아니었다.


“아, 운동 얼른 다 끝내야 하는데.”


기분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흔히 갖는 전형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어쩌면 항상 슬프고, 눈물이 많고, 울적한 표정에, 짜증도 잦고, 무기력하며 히스테릭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려나. 반은 맞고 반은 아마도 아니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어쩌면 “우울증 환자들은 다 그럴 것이다”라는 명제로 그들을 묶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처럼 우울증 삽화(또는 에피소드)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표현하는 우울도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자신의 흠이 우울이라고 생각해서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며 텅 빈 완벽을 해내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우는지도 모른 채 흐르는 눈물을 무심하게 닦아내고는 뒤돌아 웃는다. 또는 깊은 슬픔에 빠져 갑자기 고립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이 되었든지 간에, 모두 우리의 주변에서 각자의 우울을 표현하고 있다.


플랭크를 하다가 울어버린 그날 새벽에 나는 내가 죽지 못해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동이 트기까지 비몽사몽 뜬눈으로 지새우고는 그 길로 집 밖을 나와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하게 플랭크 자세를 취했다. 1초, 2초, 3초, 4초 ... 방울방울 진하게 얼룩진 매트 위, 그 자국을 수건으로 훔쳐내고는 황급히 헬스장을 나왔다. 눈물을 훔쳐냈지만 도망칠 곳은 더 이상 없었다. 그때 나는 병원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치과 예약을 하듯 정신건강의학과를 능숙하게 예약했다. “00일에 몇 시쯤 예약이 가능할까요?”와 “초진입니다.” 같은 간단한 질문과 대답을 끝내고 나니 헬스장 안에서 나를 찾는 트레이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다시 플랭크를 하러 헬스장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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