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격이 급하다. 해야 할 일은 미루지 못한다. 여유롭게 여행하자고 하기엔 모순이 있다. 하지만 나는 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신다. 내게는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여행하는 여러 방식이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를 돌아본다. 처음부터 혼자 하는 여행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오사카에 친구들과 갔을 때였다. 언니 두 명과 여행을 갔다. 나는 당시 H2라는 만화에 빠져있었다. 만화에서 나오는 고교야구의 성지인 고시엔(야구장)에 가고 싶었다. H2를 모르는 친구들에겐 의미 없는 장소였다. 나는 고민 끝에 용기를 냈다. 나는 오사카 여행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고시엔으로 향하는 전철을 타고 10분쯤 갔을 때 내 생각은 바뀌었다. 나는 주변을 보았다. 사소한 다름을 보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연습을 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는 하루나 이틀을 먼저 가거나 늦게 돌아왔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혼자라서 좋았다. 혼자라서 나가고 싶을 때 나가면 된다. 또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 그리고 주변을 관찰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 볼 수 있었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하면서 여유를 배웠다. 나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가정을 한다. 다시 간다면 어떤 부분을 수정할까? 많은 곳을 여행했고 나의 방식도 정리되었다. 나만의 여행 방식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의 방식을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가고자 하는 곳의 인문학적인 정보를 모은다.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거나 다큐멘터리를 본다. 가기 전에도 여행지를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여행지의 서사를 모은다. 역사를 공부하지만, 동선을 짜지는 않는다. 꼭 가고 싶은 곳들만 정해 놓는다.
두 번째 한 도시에 3일 이상 머무른다. 이동 하는 날은 쉰다. 여행을 좌우하는 것은 날씨라고 생각한다. 비 오는 파리를 3일 봤다고 해서 파리가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건 안타깝다. 비 오는 서울과 화창한 서울의 얼굴이 다르듯이 다양한 모습을 보려고 한다. 세 번째, 도시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른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에는 사연이 있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그때를 떠올리는 걸 좋아한다.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어울리는 곡을 정하거나 앨범을 정한다. 일상에 돌아오면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은 자연스럽게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네 번째, 도시에 도착하면 워킹 투어를 한다. 요즘은 현지투어들이 잘 되어있어서 투어를 고르는 건 어렵지 않다. 투어는 지식 투어를 기본으로 하고 첫날에 지식 투어를 하면서 전체적인 대중교통 이용법이나 지리를 익힌다. 심각한 길치인 나에게는 필수다.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 건 여유로운 에피소드지만 알고 잃는 것과 모르고 잃는 것은 다르다.
마지막으로 한 도시에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정한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 피렌체의 종탑, 베니스의 카페 플로리안,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나에게 그런 장소들이다. 그리고 그 장소를 자주 간다. 그 장소만 가기도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유명한 시처럼 나는 오래 보고 싶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다. 2014년 나는 30일간 유럽을 여행했다. 많이 보지 말고 깊게 보자. 하고 생각했다. 여행을 가기 전 설렘으로 지냈다면 지금은 다녀온 뒤의 추억과 느낌, 그리고 다시 만날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밤 12시에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의 치안은 악명이 높았다. 늦은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두려웠다.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싶었다. 한국에서 픽업 서비스를 예약했다. 하룻밤 호텔비와 비슷했다. 간단한 영어를 하는 로마인 기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국장을 나왔다. 내 이름이 적힌 스케치북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 훤칠했다. 검정색 더블 수트를 입고 있었다. 내가 인사하자 그는 나를 차로 안내했다. 단순히 픽업서비스를 신청했었다. 그런데 리무진이었다. 그가 뒷문을 열어주었다. 과한 시작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는 로마의 야경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줬다. 왼쪽을 봐라. 오른쪽을 봐라. 늦은 시간 거리는 한산했다. 현대와 고대의 건물들이 교차되어 있었다. 왼쪽에 콜로세움이 보였다. 실감이 났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좋아하던 영화들을 몰아봤다. 그 중에 로마의 휴일도 있었다. 2006년 이후 8년 만에 나는 다시 유럽에 왔다. 나는 로마에 있었다. 아무도 없는 트레비 분수를 보고 싶어서 가까운 호텔을 예약했다. 체크인을 하는데 매니져가 아는 척을 했다. ”너를 기억해!“ 나는 몇 번 메일을 보냈다. 궁금한 것들을 묻기 위해서였다. 내가 너무 유난을 떨었나 하는 마음에 웃음이 났다. ”로마에 온 걸 환영해“ 그는 웃었다. 짐을 푸는 과정은 간단했다. 트렁크를 열었다. 샤워를 했다. 트레이닝복을 갈아입었다. 나는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췄다. 시차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알람소리에 일어나니 5시였다. 스스로 까탈스럽다며 잠자리를 걱정했었다. 나는 여행내내 머리를 대면 잠이 들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이었지만 가뿐하게 눈이 떠졌다. 5월 로마의 새벽은 상쾌했다. 트레비 분수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3분정도 걸렸다. 더럽기로 유명한 로마였다. 하지만 거리는 깨끗했다. 안녕? 우린 그렇게 만났다. 청소부 한명이 분수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로마였다. 나는 분수를 마주보고 앉아 음악을 들었다. 나에겐 카메라도 없었다. 익숙한 모습에 기시감마저 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트레비 분수의 새벽, 아침, 정오, 저녁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평소 사람이 없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알람을 맞춰서 새벽의 트레비 분수를 보고 다시 와서 자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트레비분수는 발 디딜 틈이 없는 저녁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로마의 초여름 저녁 하늘은 진한 물감 같은 쪽빛이었다. 사람들은 계단부터 난간까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들은 웃었다. 누군가는 키스를 했다. 어떤 이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트레비 분수는 사람들의 활기로 아름다웠다. 로마를 떠나기 전날이었다. 나는 커피한잔을 들고 분수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에 앉아있었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들이 들려왔다. 남자가 금발의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반지를 꺼내들었다. 여자는 남자의 행동에 놀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트레비 분수 앞에 모인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했다. 여자는 기쁘게 반지를 받았고 그들은 키스를 했다. 그때였다. 트레비 분수를 돌아다니며 꽃을 팔던 장사꾼들이 그녀에게 장미를 한 송이씩 건넸다. 순식간에 그녀는 장미꽃 한 아름을 품에 안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꽃을 파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꽃을 주고 같이 있는 남자들에게 돈을 받곤 했다. 나는 그 동안 남자들이 안 사줄 수 없게 만드는 그들의 장사 수완에 웃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미를 주고 걸어갔다.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박수를 쳤다. 그들은 야구 모자를 벗었다. 과장된 모습으로 신사처럼 인사를 했다. 이제까지 봤던 트레비 분수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