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찾아온 영업의 왕
업무 특성상 외부 전화가 많고 사무실 전화기도 착신해놓은 터라 모르는 번호라도 일단 받는다. 여론조사부터 부동산 투자 전화 그리고 그 유명하신 김미ㅇ팀장까지 모르는 번호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한창 업무 중에 미 저장번호가 뜨고 혹시 기다리던 택배기사님의 해피콜일까 수신 버튼을 눌렀다. 내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고는 자신을 기억하느냐며 운을 뗏다. 잊을 리가 있나 전 전 직장의 사수였던 당신을.
출근한 지 3일 만에 퇴사를 고민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당시 내가 끈기 없는 20대 중반의 나약한 요즘애들이라 치더라도 2개월이 넘는 인턴십을 거쳐 얻은 정규직 자리를 쉽게 포기할 바보는 아니었다. 요즘이라면 직장 내 갑질로 신고 가능하지 않았을까? 얼굴이 날이 갈수록 어두워보인다는 말을 보는 사람마다 들었을 정도였다.
그도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다른 직원들에게 무례하게 큰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사람을 과장으로 승진시키는 회사는 무엇인가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다. 결국 1년 조금 넘게 근무하다가 퇴사하였지만 송별회 자리를 마련해주신 분들은 7개월 동안 근무했던 그가 아닌 다른 파트분들이었다.
그가 나를 찾는 전화벨을 울렸다. 무려 8년 만에 전화를 건 그는 본인을 기억하냐며 현재 직장은 무엇인지 근무지는 어디인지 나이는 몇살이었는지 속사포로 이어갔다. 처음에는 결혼을 하나 싶었다. 결혼식에 하객이 필요하다면 전 전 직장동료에게 전화를 할 수는 있는 거니까. 의구심도 잠시 본인도 퇴사를 했고 쇼핑몰을 운영하였으며 현재는 보험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내게도 도움 될만한 보험정보가 있어 연락했다고 한다. 대뜸 차주 오후 두 시에 직접 만나자는 말에, 업무는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예전 가르침이 떠올랐다.
잘 지내셨죠 라는 안부와 함께 현재 업무상 출장이 많아 당장 시간 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추후 다시 시간을 잡아보자는 그의 답을 흘리며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직 연락하는 동료가 있어 전후 사정을 포함해 혹시 그에게 연락받은 적이 있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본인도 카톡과 전화를 피하느라 애 좀 먹었다며 아무리 그래도 너한테까지 연락하냐는 노란 말풍선이 이어졌다. 항상 식후 담배를 피우며 영업의 기본은 적극성과 꼼꼼한 뭐 이제는 희미하기도 한 덕목들을 설파했던 그가 진심으로 잘되길 빌며 미저장 번호를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