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뭐 때문에 살아? 엄마 나 때문에 살지마.
어제 윤희에게 라는 영화를 봤다. 봄이 오기 전에 추위가 남아있을 때 보고 싶다는 소박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저 대사에 하루가 걸려 넘어져버렸다. 영화는 윤희의 하루로 시작이 된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하루, 무기력한 윤희의 표정. 그 속에서 산통을 깨는 게 바로 저 질문이다. 윤희는 대답한다. 너 때문에 살지. 그 말을 듣는 왜 내가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린 건지.
예전에 엄마에게 한 번 물어본 적 있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그대로 다시 살아야 함을 알고서도 나를 만나기 위해서 다시 나를 낳을 생각이 있냐고. 고작 나를 만나기 위해서 이 험했던 인생을 다시 선택할 것이냐고. 엄마는 주저함도 없이 그럴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나는 윤희의 딸 소혜처럼 엄마가 나 때문에는 살지 않기를 바란다.
하필, 오늘은 저 말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먹히지 않는 날이었다. 나는 오늘 제주도에 가는 비행기 티켓을 3만 원도 채 안 되는 가격으로 끊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났더니 문득 친구가 제주도에서 한 달 살이 한다는 말이 떠올랐고 유채꽃이 보고 싶어 별생각 없이 비행기표를 끊었다. 나는 갑작스레 제주도로 떠난 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들떴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저녁에 엄마가 나의 작은 자취방으로 왔다. 나는 엄마에게 쉽게 제주도 간다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온 엄마에게 놀러 간다는 얘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정말 뜬금없이 말했다,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그래서 그럼 이번 주에 이틀이라도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사실, 다음 주에 제주도에 간다고 숙소까지 다 잡았으니 엄마는 몸만 와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엄마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슨 제주도 여행이야.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꼭 제주도 여행이 우주여행이라도 되는 듯이 굴었다. 몇 백만원도 아닌 몇 십만원도 아닌 고작 3만원짜리 제주도여행을 말이다.
저번에 한 달 동안 제주도를 갔을 때 엄마는 내 인생이 부럽다고 했다. 정확히는 그걸 실행하고 생각하는 내가 부럽다고 말했다. 이 인생이 가능한 것에 분명히 엄마의 덕이 있을 텐데, 나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또 나 혼자 행복하려 한다는 게 얼마나 마음 아프던지. 내가 누리는 이 팔자 좋음이 엄마의 불행과 고됨에서 비롯되는 것 만 같아서 나는 미안했다.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고 모든 것을 해 줄 필요도 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엄마의 불행이 꼭 내 탓인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내가 행복할 때면 왜인지 모를 부채감을 느낀다. 나 혼자서 이렇게 팔자 좋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나는 엄마를 변명으로 불행할 궁리를 한다. 이왕 행복할 거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넌지시 말했다.
내가 성공할 때까지 건강해야 돼 물론 계속 틈틈이 잘할게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