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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진 Sep 03. 2019

지난 늦봄의 기억

혼자 남겨진 그 자리에서 엉덩일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음을 뗄 수 있겠다.


평소와 같이 늦은 밤 뜨거운 물을 틀어두고 샤워를 하다가 깨달았다.

이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다 하는 이별 이건만 그게 너무 아파서 내겐 뭐가 그리 특별해서 글을 한마디도 적어둘 수 없었다.

이제야 나를 보듬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혼자 남겨진 그 자리에서 엉덩일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음을 뗄 수 있겠다. 같이 만들어두었던 계절에 혼자 자처해 남겨져있던 것도 이제는 그만해야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집에 모아두었던 편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꺼내기를 반복했다.

매주 목요일이면 청소 이모님이 오셔서 내 방 쓰레기통을 비워주시는 사실을 기회삼아,

매주 수요일이 되면 편지를 전부 모아 쓰레기통에 넣고 집을 나섰다.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마음이 언제나 조급했다. 편지가 마지막 연결책인 양 그게 버려지면 우리였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사라질 것 같았다.

밤이 되면 집에 돌아와 행여 누가 내 쓰레기통을 비웠을까 봐 급하게 쓰레기통을 열어보고,

결국엔 구겨진 편지들을 다시 꺼내 없었던 일처럼 구겨진 부분을 몇 번이나 펴내다가 책장 깊숙이 숨겨두기를 반복했다.

우리 엄마는 몇 번이나 내 방 작은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던 편지를 발견하셨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사진은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다.

손가락으로 빠르게 스크롤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너의 사진이 스치기라도 하면 멀쩡하던 심장이 녹아 바닥에 내려앉았다.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주룩 흘렀고,

그냥 방 안에 앉아있다가도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아직도 가끔 떠오르는 네 웃음이나 우리가 나누던 대화. 함께 보냈던 일상적 순간들이 날 아프게 한다.

그래도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우리는. 우리였던 시간은 이제 끝이 났다는 것,

나도 이제야 준비가 되었다는 것.


-지난봄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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