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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진 Aug 09. 2019

밤 산책

같은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참 사람 마음이 웃기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타인을 만나 서로의 삐죽한 모서리를 닳게 해 둥그렇게 만들어가는 과정.

그렇게 서로 노력하며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모든 일들이 정말 어려워져 역시 나는 혼자인 게 편하다 싶다가도, 가끔은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가득 사랑을 베풀며 또 그만큼 나도 사랑을 받고 아껴지고 싶다.


싱글 라이프를 누구보다도 즐겁게 보내던 영국 생활.

그날도 밤새 친구들과 춤추며 내가 술인지, 술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술에 가득 잠긴 채 튜브에 몸을 실었다.(튜브 - 영국의 지하철)

한참을 졸다가 도착한 Turnpike Lane Station. 지끈거리고 화끈거리는 발의 통증에 결국 신발을 벗어 손에 달랑 건 채, 간도 크지- 집 근처 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걸었더랬다.

걸어오는 동안 얼추 술이 깼는지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와 바로 집에 들어가려던 찰나에 흘깃 쳐다본 공원은 도저히 들어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더러워진 발을 그대로 신발에 욱여넣은 채 결국 공원으로 향했다.

비가 온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던. 그런 애매했던 날씨의 새벽 공원.

빗방울이 조그맣게 두 세 방울씩 떨어지고, 거뭇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공원은 마치 잠이 든 것만 같았다.

나무까지도 잠들어 있는 이 밤에 나 혼자만 깨어 공원을 돌아다는 듯한 미묘한 기분.

뻥 뚫린 시야, 그리고 빗물을 머금은 공기가 너무나 깨끗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얼굴에 한 두 방울 떨어지며 닿는 빗방울들이 부드럽고 동시에 시원했다.

그렇게 공원을 찬찬히 또 잔잔히 걷는데, 공원의 잔디밭에 동그랗게 내려앉은 빗방울들이 가로등의 빛에 비춰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누군가 보석을 잘게 가루 내어 공원에 잔뜩 뿌려놓은 것처럼.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물기 머금은 공기, 그리고 소음하나 들리지 않던 조용한 밤. 내 신발이 잔디를 스치고 흙을 지그시 밟으며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소리, 음주로 잔뜩 좋아진 기분에 뻥 뚫린 공원의 사야까지.

내게 이 장면을, 이 순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했다.

나란히 손을 마주 잡고 공원을 걸으며 조그맣게 작은 소리로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 없이도 조용히 함께 이 순간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행복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

가끔은 오늘처럼 미친 듯이 춤도 춰보고, 작은 테킬라 샷을 주문해 손등에 소금을 얹은 채 들이킨 후 레몬을 물고 인상을 찌푸리며 서로 키득거린다든지. 뻥 뚫린 자연 풍경을 앞에 두고 서로 말없이 기대앉아 사회생활로 잔뜩 엉켜 있을 마음을 가라 앉히거나, 좁은 자취방에 앉아 랩탑에 영화를 틀어두고 영화관에서는 절대 하지 못 할 정도의 큰소리로 러닝타임 내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해대는 주인공을 욕하거나. 그렇게 나와 행복한 순간이 같을, 그런 함께 할 수 있는 존재.

조그맣게 내려오던 빗방울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한없는 아쉬움에 한참을 그 공원에서 서성거리다 느리게 발걸음을 떼어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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