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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Jun 04. 2024

바다를 바라보거나, 숲속이거나

기장의 마을도서관들

 

책  읽기 / 이종민 그림


빌딩 숲에서 출발한 차는 터널을 통과하여 가더니, 공기의 느낌이 다른 어느 곳에 나를 풀어놓았다. 소나무의 짙은 향이 태고로부터 밴 숲 사이를 버스가 헤치고 들어간 후였고, 나도 모르게 차창을 열고 맞바람을 가슴 깊이 받아들인 후다. 잠시 후 한껏 상쾌해진 나는 도서관의 문을 열고 책 속으로 다가갔다. 책 너머로 보이는 그곳은 산이고 숲이었다.


이어서 언덕 하나를 더 넘어가자, 이번엔 푸른 바다와 포구, 그리고 오래된 마을이 순서대로 나타난다. 풍경의 주조 색이 바뀌고 기온이 달라졌음을 알았다. 짙은 청록의 바다로부터 이곳 사람들의 기질이 나왔다고 혹자들은 말했고,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땅의 끝이었고 이어진 바다였다. 물색을 닮은 푸른 건물 속의 도서관을 향한다. 그 속에 파란 책들이 물고기처럼 헤엄을 치고 있을 터이다.


다시 차는 달린다. 사람들이 제법 붐비는 곳에다 차를 세운다. 곧 여름이 오려는지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역 냄새가 풍기는 바다의 끝은 아득했다. 진리의 바다에 한계가 없듯이. 물안개에 싸인 몽환적인 바다는 내게 말을 걸었고, 나 또한 종이에다 무언가를 쓰고 있다. 낱낱의 언어들은 시가 되고 소설이 되려는지? 저자명에 내 이름이 적힌 상상의 책을 떠올린다.


기장의 작은 도서관들은 마치 오래된 마을의 시골 우체국을 닮았다. 동네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들며 편지를 쓰고, 또 사연을 붙이고. 가끔 먼 곳으로부터 편지가 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겉봉투를 뜯어내곤 하던. 그런 오래되고 익숙한 풍경들이 작은 도서관에 모여 있다. 서가에 혹은 책상에 동네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사람의 향기가 아름답다. 거기에 책 내음이 섞인다.


책을 읽는 어머니와 아이는 가끔 고개를 들어 바다와 숲을 바라본다. 간혹 아이의 표정에 엷은 미소가 번지기도 하는데, 그 작은 미소는 곧 엄마의 미소를 불러온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다시 종이를 펴고, 그 표정 너머로 보이는 꿈이란 단어를 썼다. 그러한 우리의 광경을 책이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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