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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데미 무어가 아니다

예쁘고 강하고 다 하는 여자

by 잡귀채신

생각해보면, 나의 부모님은 나를 편견없이 키우신 거였다.

얼굴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검댕을 묻힌채로 화려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쌍절곤을 쥐고 고무줄뛰기를 하는 어린이. 예쁜것과 강한것에 집착했던 나의 어린시절이다. 예쁜것과 강한것 그 둘 사이의 간극때문에 좀 혼란했었다. 그 둘은 양립하기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캉캉치마를 입고 철인3종 달리기에서 우승을 하는게 추구미였고, 실제화가 참 쉽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중학생이던 나는 '영화마을'* 알바생 오빠가 강추해준 영화 <G.I. 제인>을 통해서 데미 무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두둥. 테이프가 늘어날때까지 돌려보고 아빠의 면도기로 머리를 밀었을 정도로 그녀는 완벽했다. (머리는 생각만큼 쓱쓱 안밀려서 그냥 쥐파먹은 스타일로 끝났다. 뭔가를 따라하는것은 늘 이런식의 결말이다.) 이 영화는 내 눈알에 스파크를 일으키고 윗몸도 일으켰다. '여자가 강해진다는 것은 진짜 존나 멋진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참 신나는 일이었다. 나는 참지않고 태권도장으로 달려가 고려 금강을 배워댔다. 그러면서도 '예쁠 것'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한은 애썼다. (애썼..다)

<G.I.제인> 1997, 리들리 스콧

이후로 나는 그녀의 모든 작품을 보았고, 감탄했고, 따라하다가 실패했으며, 그녀의 가십을 듣고 한귀로 흘리며 <미녀삼총사> 이후로도 뭔가 제대로 나를 한방 더 먹여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오래 걸려, <서브스턴스>로 다시 만난 데미 무어. 이 미친 양반! 데미 무어는 코랄리 파르쟈 감독과 마가렛 퀄리라는 멋쟁이 친구까지 달고 나타나주었다.


여러분들 같으면,

이름을 처음듣는 나이많은 여자 감독이, 다 늙은 데미 무어를 데리고, 잘생긴 남자는 1도 등장하지 않는 주제에 내내 살을 가르고 내장이 튀고 피를 칠갑한다고 하는 영화가 있다고하면 돈을 내고 보러 갈것인가?


다른건 모르겠는데 <서브스턴스>는 보시라고 말하고싶다. (하지만 꽤 고어물이니 각오 하셔야 한다.)



<서브스턴스>

왕년 스타였던 늙은여자가 회춘시켜준다는 약 '서브스턴스'에 손대기 시작하면서 분신같은 젊은 여자 몸을 덤으로 얻게되고, 그 젊은 몸과 늙은 몸을 번갈아 쓰다가 더 젊고싶어서 정신병자처럼 발악하게된다는 내용.


<서브스턴스>의 메세지는 간단하다.

그렇게 젊고만 싶고, 젊은것들만 또 찾아? 다들 정신차려. 피칠갑해주기전에.


다시 말하지만, 이건 보셔야 한다. (영업력이 딸려서 여기까지...)





요 근래 들어서 '자존감' 이라는 어려운 말씀을 많이들 하시는데,

'넌 지금도 예뻐' 류의 순하디 순한 말로는 위로도 뭣도 사실 되지 않는다. 뭔가 나를 작동시키지는 않는다고 보는게 맞다.



데미무어 언니가 안광을 번뜩이며 내쪽으로 걸어온다.

'예쁘고 말랐고 눈크고 다리 길고 어쩌구 저쩌구' 라고 적혀있는 것들을 쫙쫙 찢어 발기고,

정신차리고 너가 지금 사랑하는 일들에 감사해. 그리고 너만의 예쁘고 강하다는 기준을 찾아내. 끝난건 없어. 그냥 계속 가는 거다. 컴온 걸스!


예쁘고 또 강인한 여자로 거듭나는 길은 말이나 글에 있질 않는다. 그것은 액션의 영역이닷.

나는 어느새 쿨하게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거수경례를 부치고

방치해둔 나의 환자같은 입술에 텐션 올려 빨간칠까지 해본다.

여러분들은 아실까?

지금 이 빨간칠은 외압에 의한게 아니라 내 삶에 대한 감사의 마크라는 사실을.


제 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영화마을 : 추억의 비디오 대여점 상호입니다. 모르실경우? 어려서 좋겠다! 아이코, 피칠갑당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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