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

by 잡귀채신



1.

당근은 2년생 작물로, 1년차에 뿌리를 키우고 2년차때 그 에너지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게되는데, 우리가 먹는 당근들은 1년차, 즉, 꽃을 피우기 전의 에너지를 모두 뿌리에 모아뒀을 순간인 셈이다. 당근의 그 꿈 에너지를 우리가 다 먹는거였다. 어쩐지 효능이 남달랐다했어. 안구에 태평양 바다가 넘실댄다.



2.

너무 좋다.
소리없이 녹슬거리는 마음같은 바람.
한 시간전까지만해도 태풍이었던 것만 빼면
당황스러울것도 없지.



3.

이곳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그 때문에 죄없는 이 땅을 증오한 적이 있다. 떠나간 그는 사고 때문에 세상을 저주했고, '왜 하필 나만'의 고통이 뿜어내는 끝도없는 생가시로 사랑하는 모든이 찌르기만하고 가 버렸다. 감히 말하건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살아남는 것은 죄책일까. 인간은 결국 내입에 달아야만 기쁘게 삼키는 것 뿐일까. 한 번 정도는 마주 해보고 싶었다. 뭘 먹어도 입을 쓰게 하는 것이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인지 아닌지 어쩐지 내 눈으로 내 몸으로 아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도착한지 24시간만에 계획보다는 오래 머물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냥 바로 정들어버린 것이다. 비록 호스트 할머니는 미간주름이 선명한 습관성 신경질쟁이였지만, 축축하고 차가운 철제 침대가 기분나쁜 찌그덕 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거의 야외나 다름없는 혹독한 샤워장과 말도 안되는 무게의 장화를 신고 일해야하는 등등의 조금 성가신 부산물들이 있긴 했지만. 어때-식의 기분이 되어버렸다.
이곳의 사람들은 치즈를 좋아하고 맛에 감동하며 자연에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소들도 치즈를 먹고 털을 깎는 사람들을 믿고 따른다. (아주 멋대가리 없게 표현하자면, 치즈와 털을 사랑하는 한 절대 죽이지 않을 것임을 알기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의 믿음은 눈에 그대로 박혀있다. 가리거나 숨김도 없이. 그 소들이 보여주는 깊은 신뢰감 덕분에라도, 그 눈을 봐버린 이상 사람들은 허튼짓을 못한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계약은 그 크립토같은 소 눈망울 앞에서 이뤄져야 할 것 같다. 감사. 감사는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아침 스트레칭처럼 습관적으로 건조한 기도를 한다. 는 다시 반복한다. 당연하기 때문에 건조할수 있다고.
소와 사람은 그렇게 원하는걸 조용히 요청하고 내어줄 것을 내어주며 서로 이해관계의 고리를 걸고 또 건다. 그렇게 맺어진다는 것이 서로를 살리는 일임을 목격했다.
비록 이 아름다운 경관앞에서 어떤 잘못된 사고가 벌어지고 누군가는 살려지지 못 했다 해도 그것은 그것대로 맺어지는 것 같다는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무런 폐가 되지 않으려 맺어짐을 피한다면
덤으로 얻은 이 생명의 효용을 혼자만 즐기려는 괘씸하고도 어리석은 태도인게 아닐까. 서로에게 신세를 지고, 저울이 기울어 고장 날 만큼 내어주며 살야할 것만 같다. 근데 흙탕물을 튀기고 지나간 운전자에게도 저울이 기울만큼 무언가를 줄 수 있을까? (아직 조금 멀었다..)
다만 헤어질 자신이 없어서 걱정이다. 너무 많이 울게 될 것 같다. 너무 많이 우는 건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걸 잘 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과 건강하게 헤어질 준비가 되면 떠날 예정이다.

그리고 나도 좀 아무 이유없이 좋기만 해보고 싶다.

하루의 1/6을 멍만 때리며 지낸다. 이유없이 좋은 멍.



4.

생명을 예의있게 소비하지 않으면

자연은 세이돈의 트라이던트를 꽂는다.

대자연은 실로 무서운 것.



5.

버스 창문에 아무렇게나 낙서하듯이
통화중에 볼펜으로 무의식의 도형그리듯이
수업중에 집중력 나락보내고 교과서 여백에 의미없는 글자를 쓰듯이
눈이나 낙엽을 월드컵응원 박자로 맞춰서 밟듯이

쓰고 쓰고 또 쓰고.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고.

노트가 기분좋게 더럽고 손날도 가뿐하게 새까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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