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재활 #7] 유니버셜 할리우드와 해리포터

by 잡다한


이쯤되면 우리가 일어나는 시간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침 이제 남은 일정은 일어나는 시간이 반드시 중요한 날은 아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고, 귀국일을 제외하면 남은 날은 이틀.

내 <재활>도 이제 이틀이면 끝난다.


오늘 일정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

오픈 시간보다 훨씬 먼저가려 했지만, 체력 이슈로 인해 오픈 시간에 딱 맞추기로 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 공식 홈페이지에 가면

그 날 오픈시간이 몇 시인지 미리 볼 수 있다.

우리는 비성수기라서 10시에 열리고, 18시에 운영을 종료한다.

과연 8시간 안에 모든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


유니버셜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고 우리는 여덟시 반에 출발했다.

큰 특이사항 없이 달려준 지하철과 버스 덕분에 아홉시 반에 역에 도착했다.

근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유니버셜 오사카에서는 출발하는 지하철부터 사람이 많았는데.

특히 해리포터 망토를 두른 사람들 천지였거든.


유니버셜 할리우드까지는 역에서 내려서도 한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걷는 방법도 있지만, 당연히 셔틀도 있다.

15분 정도에 한 대 씩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셔틀 정류장으로 갔더니 그나마 사람들이 몇 팀 보였다.

이제 좀 놀이공원 가는 느낌이 나네.

이렇게 생겼다. 뒤쪽으로 엄청 길다.


몇 분 정도 기다리고 셔틀을 탑승했다.

우리 앞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셔틀이 올 때 쯤 되니까 어디서 다들 등장했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셔틀에 탔다.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있기는 한지 모를 언덕을 넘고 주차장을 지나서

유니버셜 입구로 가는 길목에 내렸다.

* 풀네임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이지만, 이하 '유니버셜'로 통칭.

오사카(재팬)과 구별해야 할 때 등등에 한해 유니버셜 할리우드로 지칭할 예정이니 참고 바랍니다.


길목을 통과하고 그냥 앞 옆 뒷사람이 가는 길을 같이 흘러가다 보면

그 유명한 유니버셜 지구본 모형 동상이 보인다.

유니버셜 재팬과 다르게, 아니 전 세계 다른 유니버셜들과는 다르게

유니버셜 할리우드는 지구본이 푸른색이 아니라 은색 철골 구조물로 되어 있다.

마치 판타스틱 4에 나오는 실버서퍼가 다녀간 느낌.

그래서 그런지 더욱 특별한 느낌이 크다.


지난 2017년 4월 29일에 유니버셜 재팬에서 찍은 포즈를 그대로 취했다.

7년 반이 지나서야, 다른 공간에 위치한 유니버셜에 다시 올 줄이야.

역시 유명한 포토 스팟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와 프로도도 괜찮은 자리를 찾아서 지구본을 한 바퀴 돌았다.

내 기억상, 유니버셜 재팬의 지구본은 자전하며 로고가 돌아갔던 거 같은데

할리우드는 왜 고정되어 있지.

돌아가는 타이밍에 맞춰 셔터를 눌러야 하는 수고가 덜어진 반면

메인이 되는 글자들이 있는 곳에는 이미 사람이 많았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외국 사람들은 사진에 대한 배려가 적다.

무슨 말인가 하니, 남이 사진을 찍든 안찍든

옆으로 비집고 들어와서 자기 사진을 찍고는 만족하며 홀연히 사라진다.

심지어 줄이 진짜 길어도 그냥 무시하고 그 옆에서 찍는다!

물론 거센 항의를 받지만, 그 정도에 굴복할 사람이라면 애초에 행하지 않았을 터.

그리고 그 때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웃으며 '쏘리' 한 번 날려주고 가버린다.

높은 확률로, 언어에 강한 성조가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냥 온전히 내 경험만을 바탕으로 한 신뢰성 없는 빅데이터이므로 너무 믿지는 말기를.

2024년 LA 와 2017년 오사카


프로도의 사진 실력은 나날이 발전하여

이제는 10장 중 3장 이상을 건질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포토그래퍼가 되었다.

딥-러닝에 성공한 Chat-PRD 는 뿌듯해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나도 뿌듯하다 야.

그럼 나 그랜드 캐니언 사진들만 좀 다시 찍어줘라.


속마음까지 듣기엔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AI PRD는 이제 입장 준비를 한다.

나는 아이스하키 티켓의 영향으로 전날 세 번이나 확인한 유니버셜 모바일 티켓을 화면에 띄운다.

여러분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입장에 성공한다.


유니버셜에는 기본 입장권 말고도

자본주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빈부격차를 판매한다.

예를 들면, 입장 시간보다 조금 빨리 들어갈 수 있는 VIP 입장권.

* 10시 개장이면, 9시 40분쯤 먼저 입장시켜주는 셈이다.

나는 유니버셜 재팬에서 이 입장권을 추가 구매하였다.


Express 5 등 주요 놀이기구들을 줄 서지 않고 빠르게 탑승할 수 있는 티켓도 있다.

성수기에는 놀이기구 하나에 90분이 넘기도 하니, 최소 3-4시간은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생긴 '슈퍼 닌텐도 월드'는 사람이 많으면

놀이기구는 커녕 입장조차 할 수가 없는데,

슈퍼 닌텐도 월드 안에 있는 인기 놀이기구 '마리오 카트'가 포함된 익스프레스 티켓을 사면

무조건 입장할 수 있게 해주는 상술이 있어서 많이들 구매한다.


이외에도 배스킨라빈스 31 마냥 다양한 티켓들을 판매하는데

다 외우고 있는 건 아니라서 그냥 그런게 있다고만 알아주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무슨 티켓을 샀냐고?


우리는 그냥 기본 입장권만을 구매했다.

일개 무자본 어글리 코리안들은 자본주의의 맛 따위 느낄 여유가 없으므로 과감하게 제끼고,

11월 중순의 목요일이라는 비성수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유니버셜 할리우드의 성수기/비성수기와 티켓구매를 추천하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사이트에서도

우리가 가는 날짜에는 딱히 추가 티켓 구매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별 수 없지. 믿는 수 밖에.


그리고 그 믿음에는 엄청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인들의 만능 블로그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니버셜 할리우드는 Upper 와 Lower로 나눠져 있어서 동선을 사전에 잘 짜야 한다.

가장 인기있는 닌텐도 월드는 Lower 에 있어서

보통 입장하자마자 Lower 로 달려가서 닌텐도 월드 입장하고 마리오 카트부터 타는 게 정석인듯.


Upper 와 Lower 를 이어주는 에스컬레이터는 생각보다 어어엄청 길다.

거의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생각날 정도.

걸어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지만, 추천하진 않는다.

나와 프로도도 당연히 입장하자마자 마리오 카트를 타러, 닌텐도 월드로 달렸다.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내려갔고 슈퍼 마리오의 상징과도 같은 초록색 파이프관을 통과하자

유튜브와 블로그에서만 봤던 닌텐도 월드가 눈앞에 2D 세상이 되어 펼쳐졌다.

* 명칭은 슈퍼 닌텐도 월드이지만 마리오 말고는 다른 IP는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슈퍼 마리오 월드로 봐도 무방하다.


구경은 좀 이따가 하고 우선 마리오 카트부터 타자.

입장 게이트에 쓰여진 대기 시간은 충격적이었다.


5 min.


뭐야 이거.

보통 최소 한 시간은 걸린다고 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리의 비성수기 갬블링은 잭팟을 터뜨렸다.

프로도, 우리 티켓 샀으면 돈 아까울 뻔 했어.

프로도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다가 선글라스가 벗겨질 뻔 했다.

사실 흔든 적 없다. 에세이적 허용으로 넘어가주세요.


말이 5분이지, 입구에서 탑승위치까지 걸어가는 데에 5분이 걸린다.

오징어게임 세트장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성 내부를 지나고

나눠주는 3D AR고글을 받아들고 탑승위치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차례가 우리였다.

진짜 개꿀이잖아?


마리오 플라스틱 모자에 고글을 붙인 채 카트에 탑승해 출발했다.

마리오 카트는 AR 고글에 화면으로 가상 플레이어들이 나오고

그들과 경주를 하며 슈팅을 통해 코인과 아이템을 사용하여 점수를 높이는 게임이다.

고글을 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고글을 쓰면 마리오카트 캐릭터들이 주위에서 같이 레이싱 중이다.

와. 이게 진짜 기술력의 차이구나.


사실' 마리오'라는 IP 를 떼고 본다면

그렇게 엄청난 재미가 있는 놀이기구는 아니었다.

흔한 슈팅게임에서 퀄리티가 높아진 정도.

그러나 '마리오 카트'라는 콘셉트와 그 기술력에는 엄청난 감탄이 나왔다.

마지막에 프로도와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 넋을 놓고 '와...'를 연신 내뱉을 뿐이었다.


단순히 IP 문제가 아닌데.

비슷한 IP인 롯데월드 카트라이더 놀이기구를 보라고.

마리오가 있었어도 이렇게는 못 만들었을걸.


여운을 즐기며 나온 닌텐도 월드에는 아직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와 프로도는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해서

전체적인 구경과 상점 몇 개를 가고 사진을 찍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다시 초록 파이프를 타고 나오면

바로 앞에 트랜스포머 4D RIDE 가 있다.

차량에 탑승하고 3D 안경을 끼면

그 차량이 막 움직이면서 주위에 트랜스포머들의 전투를 본다.

꽤나 리얼하고 박진감 넘치게 구성되어 있으며

유니버셜 4D 놀이기구들의 특징 중 하나인 멀미 유발이 덜 되는 편이다.

참고로 나는 트랜스포머를 워낙 좋아해서

각 캐릭터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혼자 캐릭터의 이름을 읊으며

내적 친밀감을 표현한 것은 프로도에게는 비밀이다.


그 바로 옆에 있는 미이라 Mummy Dark Ride

어두운 곳을 달리는 롤러코스터이다.

혜성특급과 파라오의 분노와 신밧드의 모험을 섞은 느낌.

근데 재밌다. 처음에 달려나가서 놀랐다. 중간에 뒤로 달리기도 한다.


참고로 이 모든 놀이기구들은 모두 대기시간이 여전히 5분컷이었다.

전술했듯이, Upper 와 Lower 는 이동시간이 좀 걸려서

Lower 에서 Upper 로 올라간 뒤 다시 내려오기는 무리가 있다.

Upper 로 올라가기 전에 Lower에서 후회없게 놀자.

프로도에게 이미 탑승했던 3개 중 어떤 것을 다시 타고 싶은지 물었고

프로도는 트랜스포머를 골랐다. 그래서 한 번 더 탑승했다.


1시간 30분 만에 Lower 를 정복하고 열한시 반에 점심을 먹었다.

유니버셜 특별 메뉴를 먹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결국 가장 무난한 판다 익스프레스 2트로 이어졌다.

괜찮은 맛에 괜찮은 가격으로 사람이 항상 많은 가게이기도 하다.

간단하지만 든든한 식사와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이제 Upper 로 올라갈 차례.


참고로, 아쉽게도 Lower 에서 가장 인기있는 파트인

쥬라기공원은 점검 이슈로 인해 열지 않았다.

쥬라기공원 놀이기구가 그렇게 재밌다던데, 아쉬워.


마리오카트 : 별점 4.5개 (기술력 포함)

트랜스포머 : 별점 4개

미이라 : 별점 3.5개


시간 맞춰 나와서, 막 움직인다.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대기줄이 있다.


식사까지 끝내고 Upper 로 올라가니 12시 30분.

폐장시간까지 5시간 30분이 남았다.

과연 개장시간 8시간 안에 모든 섭렵이 가능할지를 걱정했던 우리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시간이 너무 남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니버셜 할리우드에는 놀거리가 너무나도 많았으므로.


유니버셜 할리우드에는 전 세계 유니버셜 중 유일한 어트랙션이 있다.

스튜디오 투어 STUDIO TOUR 라는 이름의 할리우드 영화 촬영 세트장 투어이다.

엄청나게 긴 오픈형 셔틀을 타고 여러 세트장을 둘러보는 것인데 무려 한 시간이나 소요된다.

이건 그 명성 때문인지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5분의 두 배. 대기시간 무려 10분.


투어 가이드의 엄청난 일장연설과 유명인들의 VCR에서

지금 옆에 지나가는 세트가 어느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 나온 곳인지 설명을 해준다.

조던 필 감독의 놉 Nope, 유명 미드 굿플레이스 Good Place

사이코, 월드워Z, 죠스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영화의 촬영 세트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킹콩, 분노의 질주 등 일부 컨셉은 4D 어트랙션으로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실제로 어떤 세트에서 영화 촬영중이라, 지나갈 때 소리를 내지 말아달라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는 것에 다소 놀랐다.

아니, 너네들 이렇게 말 잘 듣는 사람들이었어?


한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정확히 이 시점부터, 나는 왼쪽 다리를 미세하게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셔틀을 탑승할 때, 툭 튀어나와 있는 철골에 왼쪽 무릎을 강하게 부딪혔기 때문.

보통 세게 부딪히면 초반엔 괜찮다가 갈수록 아파오는데

이건 처음부터 너무 아파서 혹시 실금이 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한 시간 내내 왼쪽 무릎을 주먹을 계란삼아 문지르고 있었는데

그러고 나서 땅을 딛으니 순간적으로 휘청였다.

프로도에게 말했지만 프로도는 그렇게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여튼, 자기 몸 아니라고. 너무해.


스튜디오 투어가 끝나고 나오니 사람들이 단체로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무언가를 외치는 직원들은 덤.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없던 재팬과 다르게

영어를 알아들을 수는 있는 할리우드는 '이제 곧 쇼를 시작하니 지금 바로 이동하세요'라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해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가니 '워터월드' 공연장이 있었다.

매우 유명한 공연이고 하루에 3번인가 정도만 하기 때문에

원래는 사람이 많고 자리잡기도 힘들어서 공연 몇십분 전에 미리 들어가야 한다던데

마감을 1분 남기고 좋은 타이밍으로 입장에 성공했다.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가운데 뒷쪽 좋은 자리들이 남아있어 그쪽으로 향했다.

앞자리에는 어린이가 앉아있어, 시야 확보에도 문제 없다.

공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물바다가 되어버린 세상 속 이야기를 다루기에

앞쪽 자리의 관객들은 흠뻑 젖을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각오따위 없었기에 당연히 뒷자리가 좋았지.


처음 구역별로 응원전을 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본격적인 쇼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미 유튜브로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스케일과 박진감에 놀란 경험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몰입도를 높였고

특히, 마지막 항공기 추락과 대폭발은 장관이었다.

물이 아깝다는 생각을 세 번 이상 했다면 당신은 한국인.

자본주의의 맛이란...


다시 약 40분을 앉은 채 공연을 보며 왼무릎을 조금씩 회복했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며 추락한 비행기를 어떻게 원래 위치로 다시 원상복구 시키는지가 궁금해서

조금 늑장을 부렸는데도 결국 보지 못하고 나왔다.

생각해보니 영업비밀인듯.





내 초등학교 시절 별명은 '심슨'이었다.

뭐, 이유는 다들 짐작하는 바와 같다.

초등학교때의 별명은 보통 일차원적이니까.

그때는 그 별명이 참 싫었는데, 이젠 별 생각이 없다.


갑자기 무슨 별명 얘기냐.

이어서 우리는 심슨 속 세상인 '스프링필드' 마을로 향했다.

심슨의 에피소드들을 전부 다 보지는 않았지만 띄엄띄엄 봤던 기억이 있다.

요즘에는 유튜브 쇼츠로도 많이 나오기에

등장인물 대부분은 알고 있어서 큰 무리는 없었다.


심슨 컨셉의 레스토랑과 상점, 도넛 가게까지 구경한 후에

드디어 메인 '심슨 더 라이드'를 타러 갔다.

이건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는데, 아마 이 시점부터 Lower 를 다 즐긴 사람들이

Upper 로 올라오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대기시간이 가장 길었던 심슨. 무려 15분.


사실 유니버셜은 대기하는 공간마저 그 컨셉에 맞게 꾸며놓아

어느 정도는 기다리며 구경하는게 더 낫기는 하다.

마리오카트도, 심슨도, 후술할 해리포터도

줄을 기다리며 내부 관람을 할 수 있게 구성해놓았는데

줄이 없어서 슝슝 지나가느라 잘 보지 못한게 아쉽다.

참 나. 사람 없는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심슨 어트랙션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다.

여느 유니버셜 놀이기구들과 비슷하게 4D 라이드 형식인데

좁은 방에 한 개의 차량이 있고, 앞에 문이 있다.

문이 열리면서 시작되려나 싶었는데

웬걸, 천장이 열리더니 기구가 위로 올라갔다.

각 방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천장을 뚫고 다시 만나서

엄청난 크기의 3D 화면을 보고 4D 롤러코스터를 탄다.

앞쪽 화면에서는 심슨 가족들이 무서운 범죄자를 피하는 내용의 그래픽이 나오고

화면에 맞추어 어트랙션이 덜컹거린다.

흔히 우리가 아는 그런 4D 롤러코스터와 같은데

스케일이 말도 안되게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화면 크기가 거의 스피어Sphere 가 생각나는 정도.


그리고, 이 어트랙션부터 프로도의 멀미가 시작됐다.

조금씩 속이 미식거린다는 프로도는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고, 멀미로 휘청거리는 불쌍한 타국의 두 환자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드디어 해리포터 호그스미드 존으로 입성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투어 : 별점 4개

워터월드 : 별점 4개

심슨 라이드 : 별점 4.5개




소문난 해덕 (해리포터 덕후)인 나는

화면을 보지 않고 대사 두 줄만 들어도 몇 편의 어느 장면인지를 알 수 있다.

영화만큼 반복하지는 않았지만, 원작 도서도 충분히 읽었다.

특히 원작 도서 혼혈왕자 편은, 가장 좋아하면서 또 그만큼 영화로서 아쉬운 편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덕력에 힘입어, 세계 각지의 해리포터 관련 콘텐츠를 즐긴 바 있다.

유니버셜 재팬의 해리포터 존은 당연하고

영국 런던의 해리포터 스튜디오, 킹스크로스 9와 4분의 3 승강장,

저주받은 아이 연극을 거금 35만원을 주고 5시간이나 보고 나왔다.

또한 뉴욕에서는 해리포터 체험 전시관을 다녀왔고

새롭게 오픈했던 대규모 해리포터 기념품 샵도 즐겼다.

더 이상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


지난 2017년에 방문한 유니버셜 재팬 해리포터 존은

나의 첫 해외 해리포터 경험이었는데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호그스미드 (마법사 마을)와 호그와트의 완벽한 구현은

그 이후로 간간히 꿈에 나올 정도로 인상깊었다.


그로부터 7년 뒤, 다시 해리포터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한다.

이번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미국에서.


그래 알겠다.

이쯤되면 나의 해리포터 사랑은 충분히 그 정도가 전해졌을거라 믿는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라는 눈치를 안 줘도, 마침 돌아가려는 차다.


밑밥을 많이 까는 이유는

이상하게도 가장 기대했던 공간에 가서

그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글로 표현하려고만 하면 다른것들과 다르게 글이 잘 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충분한 만족감을 글로 담기 힘들어서 그런가.

지난 5편의 스피어도, 이 <재활>의 가장 중심이었지만 글에서의 비중은 생각보다 적었던 이유이다.


해리포터 존은 여전했다.

나 같은 머글 없이도 위자딩 월드 Wizarding World 는 그동안 잘 돌아갔다는 듯이

7년이라는 시간과 태평양을 건너는 공간이 변화되었어도

그 감동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숲길을 지나서 가다보면 나오는 유니버셜 재팬과 달리

할리우드의 해리포터 존은 그냥 지나가면 바로 입구가 있다.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재팬에선 그 숲길을 걸어가면서 오는 기대감과 몰입감이 있었는데.

심지어 가다보면 있는 론의 부서진 자동차 구경도 할 수 있었다고.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호그와트행 기차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어주고

모든 상점에 들어가 기념품 구경하며 물가 확인 한 번 해 주고

이미 여러 번 마셔본 해리포터의 버터비어 구경 한 번 해 주고

지팡이 샵에 가서 이리저리 휘둘러 주고.

* 기념품을 한참 고민하다가, 마땅히 끌리는 것이 없어서 구매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물가 확인'만 한 셈이다.


365일 눈 덮인 호그스미드를 지나면

드디어 호그와트 성이 보인다.

이 성 안에는 가장 유명한 어트랙션인

'해리포터 포비든 저니'가 있다.

해리포터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컨셉.

처음에는 퀴디치를 하다가 디멘터와 아라고그(거미)도 나오고

꽤나 디테일한 요소들이 많아서 왜 10년이 지나도 최고 인기 어트랙션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유니버셜 재팬에서도 사람이 없는 날이었고

이에 해리포터 포비든 저니를 3번 넘게 반복 탑승하였다.

LA에서도 대기시간은 5분.

성 내부를 걸어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5분이 넘는다.


성 내부에는 연회장, 기숙사, 움직이는 그림들,

드디어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를 쓰는 해리포터, 론, 헤르미온느 (실제로는 '허마이오니'이다.)

빠르게 구경하며, 빠르게 지나갔다.


드디어 탑승했고, 그 대단함은 여전했다.

기술과 IP의 결합은 그 가치를 여실히 증명해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간다면 딱 이랬을 것이다.

혹시 아직 유니버셜을 가보지 못했다면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셜 재팬이라도 당장 버킷리스트에 넣는 것을 추천한다.


이 즐거운 경험을 마치자마자

프로도는 멀미로 인한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르른다.

나약한 놈. 나는 왼쪽 무릎을 이겨내고 있는데.


그런데, 해리포터 어트랙션은 원래 멀미로 유명하다.

나는 원래도 멀미를 잘 하지 않고, 워낙 해리포터를 좋아하니 멀미를 느낄 틈도 없지만.


물품보관함 근처 담장에 널부러져 있는 프로도를 뒤로 한 채

혼자 아주 간단한 해리포터 롤러코스터를 타고 왔다.

목적은 2개인데, 롤러코스터 자체의 즐거움보다는

그 놀이기구를 타러가며 보이는 해그리드의 집과 론의 부서진 자동차 (할리우드는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를 탑승하며 보이는 호그와트 성의 다른 각도.


안전바가 없어도 다치지 않을 것 같은 롤러코스터를 순식간에 끝내고

골골대는 프로도와 함께 해리포터 존을 떠났다.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우리는 이후 아직 가보지 않았던 소규모 구역들을 가봤다.

미니언즈, 마이펫의 이중생활 등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테마로 한 공간과 어트랙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대기시간이 25분에 달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오늘 입장객의 대부분은 어린 친구들이었나 보다.

과감히 그 두개는 제끼고,

잠깐 앉아서 쉴 겸 쿵푸팬더 4D를 봤다.

그냥 에버랜드에 있을만한 단체관람 4D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조금 더 퀄리티가 높은.


이제 해가 지고 있다.

햇빛을 대신할 주황색 조명들이 켜진다.


다시 해리포터 존으로 향했다.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기는 했지만

그게 한 시간 후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어두워진 해리포터 존은, 낮과는 아예 다르다.

분위기부터 달라진 호그와트 성과 조명은 낮의 그것보다 더 아름답다.


멀미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프로도를 두고

혼자서 다시 해리포터 포비든 저니를 타러 갔다.

유니버셜에는 '싱글 라이더'라는 혼자 탑승할 수 있는 줄이 따로 있는데

사람이 많은 경우 대기시간이 3배 이상 짧기도 한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어차피 5분컷이기에, 그냥 새로운 길로 가보고 싶어서 갔다.

싱글라이더 줄은 성의 내부 구경을 전부 패스하고 바로 계단을 올라가면 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성 내부 구경을 하고싶은 사람이라면, 싱글라이더를 탑승하지 말 것.


두 번째 빗자루 비행을 마치고 다시 프로도와 합류하였고

마지막으로 '올리밴더의 지팡이 쇼'를 보러 갔다.


원래 볼 생각이 없었는데, 마지막 일정이 5분 후에 있다고 하기에

바로 줄을 서고 들어갔다.

쇼는 별 건 아니고, 올리밴더의 지팡이 상점 세트장으로 들어가

약 20명의 사람들 중에 어린이 한 명을 골라

해리포터가 처음 지팡이를 얻는 순간을 재연해주는 것이다.

처음 두 개의 지팡이는 잘 맞지 않는 지팡이라서

조명이 깨지고, 책이 튀어나오는 연출을 하다가

마지막 세 번째 지팡이에서는 바람과 조명이 불며

지팡이가 너를 선택했다! 라는 컨셉이다.

이 장면을 연출해주는 것이다.

여자 어린이가 간택당했는데

마지막 세 번째 지팡이를 건네주던 호스트가 지팡이를 놓쳐서

지팡이를 잡지도 않았는데 바람과 조명이 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지만

모두가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속으로 웃는 모습이 이제는 우리도 어른임을 느끼게 했다.

다행히, 어린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이 커졌다.


쇼가 끝나고 출구로 나가면

아니나 다를까, 지팡이를 판매하는 샵과 연결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간택당한 어린이는 특별 지팡이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응? 뭐라고?

특별 지팡이를 선물로 준다고?


아니 아니.

특별 지팡이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할인도 아니고, 그냥 정가 주고 사야 한다.

반드시 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잊지 말자.

그 대상은 실수에도 눈이 커지던 어린이라는 것을.

자신을 간택한 특별 지팡이를 사주지 않고 배길 수 있는가?


역시 그렇지. 하나라도 더 팔아야지.

여긴 자본주의의 땅이니까.


무려 12개의 놀이기구 탑승을 여섯 시간만에 모두 마치고

더 이상 시간을 준다고 해도 할 게 없을 정도로 즐겼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


해리포터 포비든 저니 : 별점 4.5개

해리포터 히포그리프 롤러코스터 : 별점 3개

쿵푸팬더 4D : 별점 3개

올리밴더의 지팡이 쇼 : 별점 3개



이 오너먼트를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사지 않았다.손가락만한 크기가 4만원에 달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지하철에는 역시 한국인이 우리밖에 없었다.

사실, 이전 일정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안전'을 중요시하는 한국인들에게는

LA의 위험한 약쟁이 홈리스가 즐비한 대중교통들은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다.

렌트 혹은 우버만이 방법일 것이다.


가난한 두 한국인은 위험을 담보로 대중교통을 선택했고

그 남은 돈을 놀러다니는 티켓에 투자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위험을 목격한 적은 있어도 위험을 경험한 적은 없다.


지하철에 탑승하여 자리에 앉았다.

나와 프로도는 마주보는 자리를 선택했다.

미국의 지하철은 일자형 한국과 다르게 자리 배치가ㄱ형으로 되어있다.

두 정거장 쯤 지났을 때, 프로도 뒤에 앉은 흑인 아저씨는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아니, 몸을 꼬았다는 표현이 맞을까.

솔직히 글로 어떻게 써야 그 광경이 전해질 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괴랄한 자세를 취하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고 이따금씩 창문에 머리를 찧었다.

나는 이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외면을 했고

운 좋은 프로도는 본인 뒤에서 펼쳐지는 좀비 공연을 관람하지 못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아, 왜 여기에 앉아가지고.


다섯 정거장을 더 간 뒤에야 우리는 내릴 수 있었다.

그 동안 좀비 할아버지는 당장에라도 할리우드판 부산행에 출연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뽐냈다.

문이 열리고, 여유로운 프로도와 다르게 나는 거의 뛰어내렸다.

출구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프로도에게 내가 목격한 것을 말해주었고

이내 프로도는 그 쪽을 흘끗 보더니 여전히 출중한 실전연기를 과시하는 배우를 보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wow... 만 나지막이 뱉을 뿐이었다.


음, 관광객들이 지하철을 타지 않는 이유를 확실히 알겠군.

살았으면 됐지 뭐.


배고픈 두 한국인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만 힘이 날 것 같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LA에서 가장 유명한 한식당,

그 이름도 유명한 북창동 순두부 LA 본점으로 향했다.

밤 9시가 넘는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역시 사람이 많았다.

20분을 대기해 들어갔고

보통 두 명이서 오면, 찌개 2개 + LA 갈비 1개 구성으로 주문한다고 하는데

이미 라스베가스 핫앤쥬시 새우에서 당해봤던 우리는

각자 찌개 1개 + LA 갈비 1개를 시키는 패기를 보여줬다.


사진 속 구성이 단돈 6만원 !

이내 메뉴가 등장했고, 높게 쌓인 LA 갈비의 때깔은

마치 사흘 정도 사료만 먹다가 개껌을 본 시골 백색 강아지처럼 군침돌게 만들었다.

나의 무릎도, 프로도의 멀미도 잊게 만드는 맛.


엄청나게 야들야들한 LA갈비를 뜯으며

속을 얼큰하게 풀어줄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마지막까지 든든한 돌솥밥과 누룽지를 먹으며

두 명의 환자는 그렇게 각자를 치유했다.


우리의 하루는 또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남은 시간은 하루 뿐이다.



재활에는

훈련도 중요하지만 놀고 쉬는 것도 중요하다.

혹자는 분명 '지금까지의 여행도 놀고 쉰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LA 여행기 <재활>은 분명 놀고 쉬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 속에서의 치유를 담았다.

그러나, 그동안 하루에 많은 일정을 꾹 꾹 눌러담으며 힘들게 다닌 것과는 다르게

오늘의 일정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 단 하나였다.

더욱 더 놀고 쉬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하루였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지친 재활 속에서, 잠깐의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재활의 현실에서 벗어나 비현실적 공간에 오게 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리포터를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의미를 가지는 날이 되었다.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하루가 된 것 같다.


이제 내 재활은 하루가 남았다.

쉬어간 만큼 나는 다시 달려야 한다.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통을 위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재활 #6] 유령을 쫓아, 다시 LA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