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코>를 통해 본 디즈니식 문화 확장과 가족주의
동심을 잃지 않은 어른들
영화 <코코>를 봤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픽사가 만든 작품이라고 하면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 대한 총평 먼저 하자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잘 만든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픽사 이름에 걸맞게 높은 완성도를 갖췄고, 특히 콘텐츠를 다루는 디즈니의 수완이 탁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습니다.
애니메이션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픽사인데요. 2006년 이후 월트 디즈니 산하 스튜디오로 인수된 이후 그 존재감을 더욱 뽐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 자체보다 픽사와 디즈니 이야기를 조금 더 중점적으로 해볼까 합니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조지 루카스. 스티브 잡스.
모두 픽사를 수식하는 단어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 답게 픽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동심을 잃지 않은 어른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회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에머리빌에 있고, 직원 수는 약 800명 정도입니다.
픽사의 대표작은?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상징성과 수익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토이스토리>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밖에도 <벅스 라이프>, <월-E>, <인크레더블>, <카>, <몬스터 주식회사>, <라따뚜이>, <니모를 찾아서>, <인사이드 아웃> 등 수많은 작품들이 있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업>(UP)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픽사의 성공은 디즈니의 성공
사실 픽사의 성공 뒤에는 디즈니가 있습니다. 픽사는 지난 1991년부터 디즈니와 손을 잡고 같이 작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제작은 픽사가, 배급과 홍보는 디즈니가 담당하는 구조였습니다. 당시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디즈니에게 배급, 홍보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죠. 여기에 작품과 캐릭터 판권까지 디즈니가 소유하기로 했으니 디즈니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첫 작품이 <토이스토리>입니다. 최초의 장편 CG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중요했던 건 수익입니다. 북미에서만 1억 9200만 달러, 세계적으로는 총 3억 6200만 달러의 매출이 났습니다. 달러라 감이 잘 안 올 수도 있는데 원화로 환산하면 2018년 1월31일 환율 기준 약 3,884억 2,600만 원 수준입니다. 토이스토리가 개봉했던 1995년 당시에는 그 가치가 훨씬 높았겠죠?
참고로 디즈니에서 역대 가장 수익이 높았던 애니메이션은 <겨울왕국>입니다. 단일 영화로 약 12억 7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1조 3,627억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는 유일하게 1천만 관객을 넘겼죠.
<토이스토리>의 성공 이후 디즈니는 픽사 인수를 발표합니다.(2006년 1월) 인수는 양사의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이뤄졌고 이로 인해 당시 픽사 대주주였던 스티브 잡스가 디즈니의 최대 개인 주주로 등극하기도 합니다.
'전세계를 디즈니월드로'
디즈니의 야심
영화 <코코>는 2015년 <인사이드 아웃> 이후 오랜만에 나온 픽사의 신작입니다. <도리를 찾아서>, <카3> 등 중간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과거 영화의 스핀오프이거나 후속작이었죠. 이 때문에 픽사의 장기 전망에 대해 우려가 나오던 참이었습니다. 다행히도 현재 <코코>는 우리나라에서 누적 관객수 266만 명(2018년 1월 기준)을 넘어서며 나쁘지 않은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자체만 보면 <코코>는 재미 있습니다. 스토리텔링도 짜임새가 촘촘하고, 그 유명한 <겨울왕국>의 전 곡을 만든 로페즈 부부의 OST도 좋았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된 멕시코의 풍경과 죽은 자들이 모여 사는 사후세계의 모습도 색다른 볼거리입니다. 특히 영화의 소재가 된 멕시코 명절 '죽은 자들의 날'을 통해 죽음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멕시코인들의 문화와 풍습이 돋보입니다.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만 보는 아시아 문화와 정반대여서 개인적으로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디즈니와 픽사는 왜 새로운 영화의 배경을 멕시코로 정했을까요? 일련의 흐름들을 보면 디즈니의 원대한 야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로 미국을 너머 더 다양한 세계와 문화로 자신들의 콘텐츠를 확장하려는 계획입니다.
사례를 들어볼까요? 지난 2012년 <메리다와 마법의 숲>(픽사)은 고대의 스코틀랜드 왕국이 무대입니다. 2016년작 <모아나>(디즈니)는 폴리네시아 원주민의 토속 전설을 배경으로 제작돼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리고 이번에 멕시코 문화를 기반으로 한 <코코>가 개봉했습니다.
문화 확장을 통해 디즈니는 전형적인 미국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지역에서 새로운 관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코코>는 멕시코 박스오피스 사상 최초로 2,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무려 10억 페소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북미에서는 미국스럽지 않은 로컬 배경과 문화로 신선함과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겠죠.
기-승-전-가족?
디즈니식 가족주의
문제는 소재가 달라져도 결론이 늘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디즈니가 늘 그렇듯 이번 영화의 주제 역시 '가족주의'입니다. 아무리 디즈니라는 걸 감안해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더군요. 스포일러라 자세히 다룰 순 없지만 뮤지션이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 미구엘이 가족에게 되돌아가기 위해 스스로 꿈을 포기하려는 장면에서는 불편한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멕시코라는 나라의 문화가 특히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서라도 있는 걸까요?)
가족주의는 답이 정해져 있는, 다루기 쉬운 방정식과도 같습니다. 쉽고 명확한 메시지로 누구에게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실제 디즈니는 이 전략으로 이미 매년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고 있기도 합니다.
"돈 많이 벌면 디즈니 입장에선 나쁠 게 없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디즈니가 비판 받는 이유도 결국 가족주의입니다. 모든 영화의 이야기 흐름이 단순해지고 늘 예상 가능한 결론으로 치닫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다양한 문화를 소재로 다루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전세계에 획일화된 가치관을 전달하는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관객 입장에서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하는 디즈니의 영화가 우려 되는 게 사실입니다. 애니메이션 주 관객층이 어린 아이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고요. (가족주의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전세계 아이들의 수만큼, 이야기의 결론도 다양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ps.1
디즈니가 인수한 다른 제작사들의 작품에도 가족주의만 남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있습니다. 실제 픽사가 그랬고, 마블 영화에서도 가족주의가 스물스물 드러나고 있죠. 마블 영화 중 가족주의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앤트맨>인데요. <앤트맨2: 앤트맨과 와스프> 공식 예고편에서도 가족주의가 엿보이네요.
ps.2
가족주의를 표방하는 디즈니에서는 R등급 영화가 나오지 않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다행히 디즈니 CEO 밥 아이거는 최근 폭스 인수 발표 이후 "우리는 <데드풀>과 같은 R등급 마블 브랜드를 만들 기회가 있을 것이고 잘 할 수 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우려들을 의식한 발언 같은데, 실제로 디즈니가 R등급 영화에 적극적일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ps.3
그건 그렇고 앞으로 디즈니 캐릭터가 된 <심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