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약캐 기획자가 웹소설 보다가 킹공감한 썰.txt
요즘 웹소설이 대세라죠. 북경식은 아니지만 저도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만 나면 정신없이 봅니다.
틈틈이 정주행하는 웹소설 두 개가 있습니다. 카카오페이지 <나 혼자만 레벨업>(이하 나혼렙), 네이버 시리즈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입니다. 웹툰으로도 만들어졌을 만큼 인기가 있는 카카오와 네이버 각 플랫폼의 대표 작품입니다.
여러 웹소설을 성의 없이 눌러보다 보통은 금방 물리는 편인데 유독 꾸준히 보게 되는 것이 이 두 개였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몇 가지 공통점이 있더군요. 아마 이 특징들을 제가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 현대판타지물입니다. 평범한 일상에 판타지 세계관을 접목시킨 장르입니다. 보통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다른 차원의 게이트가 열리더니 몬스터가 떼거지로 나타났다"로 시작합니다. 이 뻔한 설정을 바탕으로 작품마다 어떻게 스토리를 전개시키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나혼렙은 RPG 게임의 레벨업 시스템을, 전독시는 개인 방송의 후원 시스템을 묘하게 접목시킨 게 흥미롭습니다.
둘째, 최약캐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처음부터 무작정 강하고, 중간에도 꾸준히 강하다가, 끝날 때까지 결국 막강한 주인공이 트렌드라는데 저는 아직 성장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원피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우솝인 건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약하게 시작하지만 끝끝내 최고의 캐릭터로 자리매김하는 걸 지켜보면 BTS를 지지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혼렙의 주인공은 모두의 능력이 고정된 세상에서 느리지만 혼자만 성장(레벨업)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전독시의 주인공은 소설이 현실이 된 세상에서 혼자만 그 소설을 다 읽은 독자입니다.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습니다. 저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철없이 세상을 판타지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최약캐가 바로 접니다.
저는 기획자로서 시작이 늦은 편입니다. 문과 출신이라 처음에는 글 쓰는 것 밖에는 몰랐고, 제주도의 유혹에 빠져 IT 회사로 이직했을 때 이쪽 업계에서 기획이 무얼 말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배울 건 많고 실수는 잦고 섬생활은 낯설고 제 낯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습니다. 어둠의 다크니스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아마 저는 그때부터 최약캐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획은 별 게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겸손하게 말하자면 그리 멀리 있는 저세상 업무는 아니었단 뜻입니다. 뭐든 기획이 될 수 있더라고요. 특히 저에게 기획은 '판타지'처럼 참신하고 혁신적인 것을 추구하되 그 바탕이 평범하고 익숙한 '현대'임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이 스큐어모피즘을 포기하지 않고, 테슬라가 스마트폰의 UI/UX를 전기차에 이식해 성공하는 것도 결국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여러 서비스를 담당할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뭔가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기획을 했을 때 서비스는 더 빛이 났고 사용자들도 사랑해주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이지만 본질은 뉴스였던 스토리펀딩, 온라인과 앱에서 오직 작가의 글에만 매달렸던 브런치 서비스가 저에게는 대표적인 현판 서비스입니다.
최약캐 기획자가 이 거친 세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에게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사실 그건 제 끈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장하는 캐릭터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업계의 많은 선배들을 취재하며 그들을 책처럼 읽었습니다. 그리고 기획자로 다시 태어난 후 느리지만 꾸준히, 레벨업하듯 조금씩 성장해 왔습니다. 그림자처럼 많은 동료들을 거쳤고 여전히 든든한 버팀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약캐는 약하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더 내려갈 곳은 없고 오를 길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도전하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도전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